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의 이름 예수!-아펜젤러의 첫 한국어 설교(1887년)

아펜젤러의 첫 한국어 성탄 설교(1887년)

그의 이름 예수”( His Name JESUS)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은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게 하시나이다.(삼하 14:14)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 헨리 G. 아펜젤러 목사(1958-1902)


"그의 이름을 예수이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요일 4:14)라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님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시 119:30) 지혜자 이르기를,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잠 15:19) 하였고, 복음 선지자는 "애통하는 선지자에게 준 약속이 이룰 때가 이르렀으니, 길을 곧게 하고, 사람들이 '한마음과 한 길"로 길을 곧게 하고 약속이 성취되는 기쁜 소식, "내가 길이요, 아무도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느니라(요 14: 7)"라는 선포를 모두 들었습니다.

1. 에덴에서 추방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 시고 다음에,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세우시고,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와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3:24) 가인이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주께서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 시 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뵙옵지도 못하리니, 이 땅 위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4) 아뢰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분노가 두려워 도망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하며“, ”너희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했습니다

2. 온전히 타락했습니다.-높은 데서 밑바닥으로 

인간은 자기 힘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불순종이었으며, 자기는 그리 악하지 않다고 조소했지만, 다음은 형제 살인이었습니다. 인간은 죄를 품고 태어나서 본성이 완전 타락 되었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의 가르침처럼 당신은 죄짓지 않았으며, 죄를 범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죄인이 아니라 합니다. 선행할 능력도 성향이 없는 “무력한”(impotent) 장애인과 같습니다.

도움은 외부에서, 위로부터 와야 합니다. 성령은 죄가 있음을 입증해 줍니다. "추방당한" 한국인의 경우를 보면, 다시 오라 “부를” 때까지 유배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3. 타락한 인간들이 멸망치 않고 구원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패역한 사람은 더 잔인합니다. 우상숭배자들은 반대하는 자를 죽이지만, 문명인은 가두기만 합니다. 그를 잘라버리지 "구원하지" 않습니다. 울부짖어도 "파괴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버리지 않습니다. 성급하지도 불합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관대하시며 용서를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심으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느 9:17)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파괴하지만, 하나님 구원하십니다.(Man destroys, God saves)

사람은 잘라 없애 버리지만 하나님은 더 기다리십니다. 사람은 모질게 정죄하며, "내게 빚을 갚으라"(마 18:28)고 하지만 하나님은 "나는 악을 기뻐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회개하기 돌아와 구원을 받기까지 그날을 연기시키십니다.

4. 거듭난 사례

거룩하신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우십니다. 인간은 타락하고 부패하며 부정하고 사망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될까요? 어떻게 쫓겨난 인간이 변하여 안 거듭난 사람이 될까요? 우리는 이 문제를 길게 토론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윤리적 섭리의 요청과 실제의 필요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John Miley, 1813-1895. The Atonnement of Christ, p63) 신성한 윤리적 섭리가 없다면 속죄의 필요성도 없고, 쫓겨난 자를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로운 섭리자(Just Ruler)이십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25)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고, 인간은 인간 존재임으로 윤리적 섭리가 신중한 윤리의 필연성입니다."(John Miley, p64)

다시 말하면 쫓겨난 사람이 부당하고 고집이 세서-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오듯,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돌아옴을 독단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망령된 왕도 살인자 압살롬을 받을 때, 정의를 감히 외면하고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연히 "의의 원칙을 무시"하실 수 없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백성의 권리와 의무를 무시"하실 수도 없습니다.

죄의 과실과 처벌에 대한 기능에 두 개의 법칙이 있습니다.(MIley, p69) 벌 대신 받는 고난도 죄에 대한 의로운 처벌로 처리하여야 하며, 이러한 도덕적 관리의 관심은 죄를 사하여주는 과정에 역효과를 내지 않아야 합니다. 타락한 죄인을 회복시키시는 수단을 취하면서, 하나님은 의로운 통치자로서;

죄에 합당한 벌을 과할 필요가 없고, 사적인 분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완전한 보복성의 의를 찾는 만족도 아니지만, 윤리적인 관리를 위해서 형벌의 사면을 위한 보상책도 찾아야 합니다.(비교; Miley, p75)

이러한 원칙으로 처리하여야 하며, 하나님은 그렇게 처리하십니다. 그래서 생명을 멸하지 않고, 쫓겨난 죄인이 영원히 못 돌아오지 못하는 죄인이 안 되도록 그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세상구원의 토대를 놓으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은 그의 희생으로 죄인들을 사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길을 놓으셨습니다!(rch)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와 Dr, 스코트랜드 목사 주택!-교회와 학교, 병원!

------------------------------------------
(*역자 주): 헨리 G. 아펜젤러는 성탄 주일 일기에 정동 베델 예배당에서 “첫 한국어 설교를 하였다"라고 했다.(1887.12.25. 주일) “교회는 만원이었고, 설교는 짧았으나 핵심적” 이라 기록했다. 본문은 마 1:21이었고, 제목은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Thou shalt call His Name Jesus)였다. 아펜젤러는 한국 감리교회의 첫 한국어 설교였고, 첫 개신교회 공식적인 한국어 설교로,  “한국국어 설교를 한 것은 몹시 기쁘다“ 하였다.

*참고: H.G. Appenzell Papers, "Sermons"와 “Dairs" 1887.12.25. 주일)/ Appenzeller: Appenzeller's Sermons, 아펜젤러 부자父子의 설교, 신앙과 지성사, 2018. 
-------------------------------------------

*한국 감리교 정동 선교기지(1885년2, 남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