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은퇴 후 7년만에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이 때, 번화한 도심 부깃빙땅의 Pavilion 4층 한식당 "다온"(Daon)을 찾았다.(2025. 1. 11. 토)
한식당 다온 NK사장은 우리 부부를 보자
얼싸안고 반가워하였다. NK 씨는 선교센터를 드나들고 있을 때 , 사모님이 차려 주시던 한식밥상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NK사장은 1990년 초 쿠알라룸푸르로 유학 와서 UM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며, 당시 외대, 부산외대 등을 졸업하고 석,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유학생들이 MY이의 안내로 선교센터 2층 주택으로 드나들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 삼 형제를 국내에 두고 선교지로 왔기 때문에 유학생 청년들이 아들 친구들만 같았고, 이들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간절하였었다. 그래서 유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주택으로 초청하였던 것이다.
릴리안은 유학생들이 불쑥 찾아오면 그렇게 반가워하며 있는 반찬을 펼처 놓았고, 즉시 밥상을 차리고 접대 봉사하였다.
유학생들은 김치, 고추장이 그리웠다며 흰쌀밥 한 그릇에 비벼서 배불리 해 치우곤 하였다. 때론 고깃국도, 김치 된장찌개도, 생일 때는 미역국으로 유학생들을 접대하였다.

유학생들이 주택에 드나들다가 선교센터에서 유학생들의 모임을 갖게 되었고 청년회를 이루어 도심 임비채플의 한인교회에도 출석하게 되었다.
또한 유학생들의 애경사를 돕기도 하였다. 한국 유학 중 말레이 남자는 한국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말레이 신랑은 말레이시아로 돌아와 말레이 마을 깜뽕(Kampung)에서 말레이 식 결혼과 잔치를 같게 되었다. 그러나 신부 측 한국인 하객은 하나도 없었다. 무슬림 마을에서 얼마나 외롭고 낯설며 두려웠을까?
이런 소식을 유학생 리더 MY 씨에게 듣고, 유학생들과 한인교인들이 결혼식과 잔치에 참여하여 축하해 주었다.
한식당 다온의 사장 NK이는 당시 유학생으로 남자처럼 복장을 하고 두 손을 내리 뻗고 구부정 인사하는 폼이 눈길을 끌었다. 그 폼은 지금도 여전하다.

NK사장은 다온 레스토랑 특실방으로 우리 부부를 안내하였고 최고 VIP로 접대하였다. 근사한 메뉴판을 보니 메뉴도 화려하였지만 가격도 접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우리는 32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살았지만 이러한 가격의 고급메뉴는 근처도 못 가보았다.
NK사장은 "목사님, 사모님! 좋아하시는 음식 마음껏 드세요" 권하고 있지만 릴리안은 주저주저하였다.

나는 "릴리안은 해물을 좋아하지요!" 말하였고, NK사장은 "그러십니까! 그러면 가리비, 킹푸로운 등으로 하지요!" 하며 즉시 종업원에게 주문하였다.
숯불에 고급철판을 놓고 가리비 조갯살을 구웠다. 이어서 왕새우 킹프로운도 구웠다. 새우껍질을 벗기고 통통한 새우살 맛은 기가 막혔다.
가리비 맛도 향긋 쫄깃한 바다 맛이 입맛을 춤추게 한다.

또한 생새우 튀김 한 소쿠리에 소복이 담겨 나왔다. 그 고소함이란 환상적인 맛이었다.
양념 갈빗살 구이도 고소한 육즙이 우러나는 향긋한 맛이 황홀하였다.
온갖 진기한 해물로 이미 포만인데 그래도 식사를 하셔야 한다며, 흰쌀밥과 소고기 된장찌개도 올려졌다.
우리 부부는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하여 VIP대접을 받았다.

NK사장은 30년 전 유학시절 선교센터의 주택에서 사모님이 차려주신 밥상을 잊지 못한다며, "그때 그 밥상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며 오히려 기뻐하고 있다.
우리는 황홀한 테이블에서 즐기며 유학생들 소식을 NK사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최MY과 동생 HJ 생각 나시지요! HJ는 한국 대기업 중역 임원으로 잘나가고 있으며, 언니 MY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사업가로 잘나가고 있단다.

그때의 유학생들 동향을 들으니 새록새록 생각이 떠올라 묻기도 하였다. 지금은 국내 대학과 말레이시아 대학 등에서 교수로, 사업가로, K-푸드 선발 무역 개척자로, 전국 유통업과 프랜차이즈로, 언론인으로 전문가로 국내와 말레이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단다. 우와! 감사합니다! 놀랍고 대견하였다.
그러나 그때 유학생들 중 배꼽티도 입고, 짧은 치마 등 차림으로 교회를 서성거려 부인 교인들이 수근수 근하여 한인교회 출입을 삼가한 유학생들도 있었다.


한인교회 성도들은 유학생들의 자유분방한 차림을 저들의 편견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수군거렸던 것이다.
왜? 한인교인들, 특히 부인들은 유학생들을 환영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교민들은 한국에서 이주할 때 그 시절 관습, 생활 스타일을 버리지 못한다. 교인들도 한국에서 교회 신앙생활하던 습성을 그대로 전통으로 지니고 있다.
그러니 한국 국내 교회보다 더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이점이 교민들 교회 부흥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러한 유학생들도 환영하며 반겼고, "한인교회에는 점심회원도 있다"며, 주일예배 후 서성이는 유학생들도 점심밥상에 늘 초대하였었다.
유학생들은 목사님께서 "교회에는 점심회원도 있다 하셨다"며, "우리는 점심회원이야" 되색이며 찾아오곤 했던 것이다.

그래도 지금 그때 유학생들의 소식을 듣고 보니, 장로도 있고, 총 여전도 회장, 권사도 있고, 선교사들을 돕고, 한인교회들에서 충실히 신앙생활 함이 감사하였다.
다온의 NK사장은 즉시 MY사장에 전화하여, "노목사님 부부가 쿠알라룸푸르에 오셨는데 무엇하고 있느냐!"라고 호통을 쳐 릴리안은 MY과 통화 연결 되었고 만나뵙길 약속하였다.

NK 사장은 코로나 때 어려웠단다. 다온 레스토랑은 8개월 동안 문을 닫았는데, 20명이 넘는 종업원들의 월급도 지불해야 하고 엄청 비싼 월세도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니, 큰 난관에 봉착하였단다.
그래도 코로나펜더믹을 지나고 지금은 그 이전으로 회복되었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주님의 은혜라 고백한다.

파빌리온의 "다온" 뿐만 아니라, "궁정"도, "고려원"도, "팔색프랜차이즈"도, "대가"도 같은 난관과 시련의 시기를 지내온 것이다.
NK 사장의 아버님은 신앙인으로 평북에서 부산으로 피난 온 분이며 자신도 교회를 다시 찾겠다고 다짐하였다. 나는 인근 임비채플을 권하였고, NK사장은 그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임비채플은 한인교회로 NK사장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다온 레스토랑을 나서며 기념촬영하였고, NK는 올 겨울 언제든지 꼭 다시 오시라며 간청하였다. 황홀한 오찬을 대접도 받고 또 오시라니! 감사할 따름이다.

파빌리온은 신춘절 설날 장식과 분위기로 들떠있었다. 파빌리온 중앙홀 매장에는 천정에서부터 온통 붉은 장식으로 흥분시키고 있다.
또한 파빌리온 입구에도 화려한 차이니스 뉴이어 붉은 색깔 조형물과 장식으로 방문객들을 즐겁게 맞이하고 있다.

국제 관광객들과 방문객들은 포즈를 취하고 사진 찍기에 분주하였다. 부깃빙땅 대로는 차들로 막혀 거북이 걸음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인파로 넘치고 있었다.

파빌리온 앞 부깃빙땅 대로에 처음 보는 GOKL버스가 있었다. 버스 2대를 연결한 버스로 KLCC와 부깃빙땅(BB)를 순환운행하는 그린라인 GOKL버스이다. 신형으로 운행된지 며칠 안되었단다. 우리 부부는 쾌적한 새로운 긴 GOKL를 타고 KLCC 숙소로 기분 좋게 여행했다!
나는 파빌리온(Pavilion)을 볼 때마다 미션스쿨자리인 점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파빌리온의 저 자리에는 미션스쿨 부깃빙땅 걸스쿨(Bukit Bintang Girl School, BBGS)가 있던 자리이지!"

선교사로 도착한 1988년에도 BBGS 미션스쿨을 보았다. BBGS 교장은 임비채플(Imbi Chapel) 성도였고, 선생들도 대부분 임비채플 교인이었다.
BBGS 미션스쿨은 건물뿐 아니라 잔디 운동장도 넓직히 있었고 수영장도 있었다.
또한 파빌리온 입구 좌측에도 기독교 교단 본부 4층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새천년 2000년도에 정부에서 사업지구 도시개발에 착수하며 BBGS 미션스쿨을 폐교하고 파빌리온을 건축한 것이다.
또한 기독교 교단 본부 건물도 파괴하고 호텔빌딩을 건축하고, 파빌리온 사잇길은 KLCC와 연계된 스카이 브리지로 걷는 길을 건설하였다.

파빌리온 앞 스타힐(Star Hill)과 파렌하이트 쇼핑센터 사잇길로 700m 지점에는 잘란 임비채플(Jalan Imbi Chapel)이 있다.
쿠알라룸푸르 한인교회는 잘란 임비채플를 사용하여 주일예배를 드렸다.

나는 선교사로 도착하여 잘란 임비채플의 쿠알라룸푸르 한인교회를 13년 동안 담임목회하였다.(1988~2000년 초)
현지 임비채플은 주일예배 후 미션스쿨인 BBGS 스쿨의 채플에서 성경 분반 공부로 모였다. 임비채플에 특별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한인교회도 BBGS 채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쿠알라룸푸르의 도심 KLCC-Pavillion-KL Tower를 도심 트라이앵글이라 하며, 걸어서 소핑센터, 카야네카 등 역사문화 곳곳을 관광하며 먹고 마시며 놀거리가 즐비한 명소 특활지역이다.
부깃빙땅 걸스쿨(BBGS)은 서구식 교육기관으로 최초의 미션스쿨이며, 선교사의 설립으로 1893년에 시작되었고, 1930년에 부깃빙땅으로 이전하여 교사를 크게 건축한 명문 걸스쿨이었다.
BBGS 스쿨의 교훈은 "Nisi Dominus Frustra"(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헛되다. 시127:1)이며, 세계적인 각 분야의 인물들을 수 없이 길러낸 명문학교이다. 마치 이화여고와 같이!

쿠알라룸푸르의 서구식 미션스쿨들은 첫 BBGS에 이어, Victoria 스쿨(1893),
Methodist 걸스쿨(1896), Methodist 보이스쿨(1897), 캐토릭 Saint John(1899), 성공회 St Marys 스쿨(1912), Maxwell 스쿨(1917) 등으로 오늘날도 건재하고 있다.
파빌리온은 한국인 관광객들도 빈번히 찾고 즐기지만, 이곳이 미션스쿨 자리임을 밝히며 그 내력을 살펴 보았다.
즉 이슬람 말레이시아 정부는 기독교 기관들을 사업지구 개발 계획으로 폐교하고 파괴하여 화려한 쇼핑몰을 건축하였다.
임비채플(Jalan Imbi Chapel)도 마찬가지이다. 임비채플은 원래 현 국립모스크 자리에 있었으나, 말레이시아 연방국으로 독립할 때 내셔날 모스크를 건설하며 임비채플을 잘란 임비(Jalan Imbi)로 이전토록 한 것이다.

오늘날 잘란 임비채플 주변은 부깃빙땅 개발로 대형 고층빌딩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임비채플은 굴하지 않고 도심빌딩 한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년은퇴 후 7년만에 임비채플과 파빌리온을 방문하여 둘러보니 감격스러웠다.
현재에도 임비채플은 도심에서 복음을 삶으로 전파하며,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나는 임비채플 교인들이 선교사를 돕고 협력하는 교회로 잊을 수 없다. 이번 한 달 살이 쿠알라룸푸르 방문 마지막 밤, 송별의 밤도 임비채플의 선교파트너들과 함께하였다. 주께 영광!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노종해:2025. 1. 19. 일.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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