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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알기

동남아는 어떻게 이슬람화 되었는가?

동남아는 어떻게 이슬람화 되었는가?
-동남아 이슬람의 심층 이해와 한국기독교의 선교 방향-
 

  노 종 해(CM리서치) 

 
 



 


 
 

▲ 말라카 이슬람 왕궁(ISTANA KESULTANAN MELAKA)


 

1. 동남아 이슬람의 특성-교역과 교류, 상호결혼으로 마음을 열고 심화되어

 

     동남아시아 군도는 원시 정령신앙(Animism)을 기반으로 인도로부터 힌두교 불교가 들어 왔고, 인도와 아랍 상인들로부터 이슬람이 전해졌다.(1)


    말레이 학자 파티미(S.Q. Fatimi)는 인도와 아랍 무역상들의 동남아시아에 최초 접촉한 연대를 674년이라 하였고, 878년에는 이슬람이 말레이 반도 해안에 정착한 흔적이 있으며, 1204년에는 대규모 개종이 이루어져 정치 세력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상인들은 말레이 군도(Malay Archipelago) 지역을 다니며 원주민 종족들과 상호 왕래하였고 11세기 인도네시아 군도와 말레이 반도(Malaya)에 무역로를 정착시키며 말라카 왕국을 이슬람화 시켰다. 1478년에는 중동부 자바 내륙의 마자파힛(Majapahit)왕국이 말라카 왕국에 합병하였고, 보르네오 섬인 깔리마딴(Kalimatan)을 이슬람 화시켰다.


    또한 이슬람은 필리핀 남부인 민다나오와 술루, 필리핀 북쪽 루죤(Luzon) 지역까지 전파되었다. 1511년 폴투칼이 말라카 왕국을 무너뜨리며 서구 식민 통치 세력이 들어오기까지는 이미 곳곳에 무슬림 슐탄(Sultan) 왕국이 설립되어 있었다.


    무슬림 상인을 통해 마을마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코란과 이슬람법이 가르쳐졌고, 교사와 학생이 함께 기숙하며 가르치는 전통방식의 학교가 설립 되어 코란과 이슬람법뿐만 아니라, 무슬림 삶을 익히는 교육 체계를 이루어 이슬람 신앙을 심화 시켜 나갔다. 이러한 학교가 자바의 뻐산뜨렌(Pesantren), 말레이의 뽄독(Pondok), 마드라샤(Madrasah)이며 이슬람 학자인 울라마(Ulama)와 지도자를 배출시켰다.


    말라야 대학 후세인 알리 교수는 이슬람이 퍼져가는 중요한 길은 마을(Village)이라고 했다. 마을은 모스크(Mosque)와 기도처(Surau)가 사회활동은 물론 종교신앙의 중심지이며 마을마다 설립된 뽄독학교(Pondok School)가 이슬람 신앙을 말레이 사회에 뿌리박게 했다고 지적했다.(2)


    또한 말라카 왕국은 동남아 지역의 무역과 문화 중심지로 급성장하면서 동서 무역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고, 말레이 언어는 동남아에 널리 퍼져 유럽의 라틴어처럼 중심 언어가 되었다.(3)


    바뚜말레이(S.Batumalai) 박사는 “이슬람은 왕족과 혼인, 상호결혼, 수피(Sufi)의 활동, 왕족들의 개종, 무역상들과 군인들을 통해 퍼져나갔다. 무슬림들은 16세기 스페인처럼 정복자로 오지 않았고 개종의 수단으로 칼을 사용치도 않았다. 그들은 우월의식과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원주민들과 같이 낮추었다”고 지적하였다.(4) 이러한 동남아시아 이슬람의 특성은 무엇인가?
 

  
  
▲ 말라카의 초기 말레이 가옥형 모스크-크링(위)과 후루 모스크(Kg Kling/Kg Hulu Masjid)


첫째, 슈피 이슬람 신비주의(Sufism Islam, Mysticism)로 삶속에 스며들어


    말레이시아의 학자 알아타스(Syed Nagub al-Attas)는 슈피 이슬람은 상인들과 무역인들을 통해 생활 속에서 스며들 듯 전해져 동남아시아 이슬람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했다. 슈피사상(Sufism)은 1488년 말라카에서 형성되었으며 말라카 왕국 슐탄 자신이 슈피였고 슈피사상(Sufism)과 교단이 슈마트라와 동부 군도까지 넓게 설립되었다.


    당시 동남아 수피사상을 수립한 지도자(Ulama)들은 “함자 판스리”(Hamzar Fansuri),“입눌 아라비(Ibnul Arabi)”, “삼술 딘 알슈마뜨라니(Samsul-Din al-Sumatrani)” 같은 사상가들이다.(5) 슈피 이슬람은 중세 기독교 수도원과 같이 스승을 중심으로 공동생활하며 영적 훈련에 들어가 내적인 깊이의 신앙을 형성시켰으며, 금욕주의(Asceticism)를 통해 자기부정의 정화단계를 거쳐 신과 하나 되는 체험을 이루어 신앙의 기쁨을 경험한다.(6)


    슈피교단 중 따리콰(Tariqah) 교단의 가르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겸손의 단계(Nasut)로 이슬람법(Shariah)에 순종하는 것, 둘째 정화의 단계(Tariqah), 세째 헌신과 절제의 단계(Malakut), 넷째 신지식의 단계(Marifah), 다섯째 신의 은총으로 인도 받는 단계로 진리에 이르게 된다(Haqiqah). 타리콰 회원은 배타적이 아니며 세습되지 않고 슈피들은 가난한 계층에 가서 봉사해야 하며 인내로 헌신하고 겸손해야 한다.(7)


     슈피 사상은 신과 합일에 이르는 엑스타시(Ecstasy)와 영적 치료(Spiritual healing)를 강조하며 초자연적인 힘과 능력을 받으려 한다. 또한 의식과 법, 제도와 형식보다는 내면적인 신(神) 지식을 추구한다. 이러한 슈피신앙은 동남아의 원시 신앙인 정령신앙(Animism)과 융합되어 자연스럽게 이슬람을 자신의 종교로 수용케 되었다. 나시 타마라(M. Nasir Tamara)는 “슈피즘이 인도네시아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자바 신비신앙(Kebatinan) 등 다른 토착 신비 신앙형태와 융합하여 뿌리를 내렸다”고 지적했다.(8)


    슈피신앙은 동남아 이슬람 신앙과 선교 운동의 기반이 되었고, 슈피 교사들이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가르쳐 이슬람이 퍼지게 하였다. 동남아 이슬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코란이냐? 칼이냐?”는 전쟁 방식으로 전래 된 것이 아니라 토착종교와 평화롭게 공존하며 뿌리를 내려 이슬람으로 흡수하였다. 동남아 이슬람은 신앙 내면적 깊이가 있음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둘째, 전통 관습의 “민속 이슬람 ”(Adat Islam)으로 토착 민속 관습에의 적응


    슈피 신앙은 “민속신앙”(Folk beliefs)과 혼합 이루어 종교생활은 코란과 하디스(Hadith),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h)를 따르기보다는 관습법(Adat, Customary law)을 따르며 이슬람 법정이 있더라도 관습법이 더 상위에 있는 사회이다. 이점에서 동남아는 무슬림이 다수라 하여도 “이슬람국가”는 아닌 것이다. 인도네시아 학자인 나시르 따마라(M. Nasir Tamara)는 인도네시아 인구 중 90%가 무슬림며 세게에서 가장 큰 무슬림 지역이지만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이 아니다. 이슬람법(Shariah)에 근거 둔 법 체제가 아니고 인도네시안 법(Indonesian Law)이기 때문이다”(9)고 지적하였다.


    우리가 동남아에서 전통적인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푸다”(Pudah) 같은 머리 스카프를 쓰고 있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으며 스카프를 써도 변형된 형태로 착용하고 있음도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무슬림이 대다수이지만 이슬람법으로 통치되지 않고 있음도 전통 관습의 “민속 무슬림”(Adat Muslim)이기 때문이다. 싱가폴대 정치학교수 후세인 무타립은 “동남아 이슬람이 “‘관습(Adat)’에 기반 두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토착문화에 뿌리 내리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10)


셋째, 말레이종족 중심(Malay Ethnicity)과 결탁 되어 있어-배타성


    동남아는 수많은 군도와 종족으로 구성된 지역이다. 주요 종족은 말레이 인종(Malay)으로 이 지역 이슬람은 말레이 정체성과 직결 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타립은 동남아 지역 무슬림은 종족 중심의 이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이슬람과 말레이 종족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가 말레이 문화와 정체성(Identity)의 중심이라고 하면서 “이슬람은 말레이의 신앙일 뿐 아니라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의 근거“라 했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오늘날 말레이시아의 말레이(Malay)와 비말레이계(Non-Malay) 간의 정치적 갈등의 주요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11)


    말레이 민족주의는 이슬람에 원리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종족 차별화에 역점을 둔 종족적 민족주의이며, 이슬람은 말레이인들의 정신적 결집력을 강화시키는 촉매 역할하였다.(12) 헌트(R.Hunt)는 필리핀 남부 섬들도 토착문화 전통과 이슬람 정체성(Islamic Identity)이 강하기 때문에 스페인이 군사력으로 정복시키려 해도 실패하였고 오히려 종족일체성(Ethnic Identity)으로 강화되었다고 했다.(13)


  
▲ 말레이시아 국왕괴 수상, 각료 등 말레이 인들의 금요예배

 
2. 이슬람 말레이시아와 기독교

 

 첫째, 말레이시아와 이슬람 도래


    말레이시아는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 다언어의 복합사회(複合社會, pluralistic society)이다. 옛 부터 중국대륙과 서구를 이어주는 동.서문명의 교류와 산업, 종교의 교차로(Crossroads) 이며,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의 용광로(Melting Pot)로써 말레이시아의 특징을 이룬다. 말레이 군도(Malay Archipelago)에는 인도와 아랍 상인들이 드나들며 힌두교, 불교와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고, 이들은 토착민들과 교류하고 함께 살기도 하면서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전파시켰다. 이슬람교는 10세기초에 무역상인들과 선교사들이 말레이 군도에 전파하여 이 지역의 유력한 종교가가 되었다.


    14세기에 말라카의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왕은 슈마트라의 사무드라 파세이(Samudra Pasai)왕가와 동맹을 맺고 파세이(Pasai) 공주와 결혼하고 무슬림으로 개종하였다. 이름도 메갓 이스칸다 샤(Megat Iskandar Shar, 1400-1414)란 무슬림 명으로 개칭하였고 슐탄(Sultan)으로 말라카 왕국의 첫 이슬람 군주가 되었다. 이로써 말라카는 말레이시아 뿐 아니라 동남아 이슬람 학문와 선교의 중심이 되었다. 마을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와 종교학교(pondok School)를 세웠고, 이슬람 신비주의인 슈피즘(Sufisim)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을 정착시키고 확신시켜 이슬람국(Islamic State)을 수립케 하였다.

 

  
▲ 말라카 폴투갈 요새/ 언덕 위에 St Paul 성당
  
▲ 더치교회와 광장


둘째, 말레이시아의 기독교-서구 식민통치와 산업으로 들어와


     말레이시아의 기독교는 서구 식민통치와 함께 들어 왔다. 1511년 폴투칼이 말라카 왕국을 몰락시켰고, 무역과 함께 캐토릭을 전파하였으며, 1641년 화란(Dutch)이 폴투칼을 물리치고 무역을 주도하며 기독교(개신교)를 전파하였다. 화란에 이어 1786년부터 영국이 통치하였다. 영국은 1874년 방코조약(Pangkor Treaty)을 맺어 말레이인(Malays)의 종교와 전통, 관습을 보호하고 보전케 하였다. 방코조약으로 말레이 왕은 행정권은 없으나 말레이인과 이슬람의 수장으로 말레이 관습과 이슬람을 보호할 권한을 가지게 되어 영국은 말레이인이 지역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 하였으며 오늘날 말레이시아 연방의 기초를 놓았다.


    영국은 중국인과 인도인들을 이주시켜 주석광산과 고무농장 등 산업을 일으키고 도시를 형성케 하였으나 말레이인(Malays)들은 농촌에서 전통적인 생활에 머믈러 있었다. 이러한 영국의 이주정책은 기독교가 서구 식민 세력의 종교이며, 중국계(Chinese)와 인도계(Indian)의 이주민 종교(Immigrant Religion)로 여기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신학대학의 알버트 왈터 교수는 “말레이는 식민통치에 저항한 이슬람과 동일시되고, 기독교는 식민 지배와 산업확장 세력과 동일시되어 오늘날 무슬림과 기독교 관계에 중요한 문제를 야기 시켰다”고 하였다.


셋째, 이슬람 말레이시아의 복합사회와 기독교


    이러한 영국의 식민정책은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하고, 1965년 말레이시아를 건국하며 “말레이인”(Malays)과 “이주해 온 인종”(Immigrant Race)을 구별하여 말레이 인종적 우월성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는 오늘날 말레이시아 정부의 부미뿌트라(Bumiputra, 본토인) 정책이며 말레이시아 국민도 크게 두 부류로 부미뿌트라(Bumiputra)와 비 부미뿌트라(Non-Bumiputra)로 나누어 원주민들과 이주민을 구분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 인구 2천8백만 명 중 65.1%가 부미뿌트라 이다. 말레이시아 시민을 더 세분해 보면 부미뿌트라 집단은 서 말레이시아의 오랑아슬리(Orang asli, 원주민)와 말레이계(Malays), 동 말레이시아 사바(Sabah)와 사라왁(Sarawak)의 토착민으로 구분된다.


    비 부미뿌트라는 주로 중국인(26%)과 인도인(7.7%)이다. 말레이시아의 종교는 인종과 비례되어 이슬람 60.4%, 불교 19.2%, 힌두교 7%, 기독교 8%, 유교/도교/중국인종교 2.6%, 원시신앙이다. 말레이시아의 기독교는 총 인구의 8%이나 이는 주로 중국계와 인도계이며, 동 말레이시아의 토착 원주민들이 기독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 더 세분하면 동(東) 말레이시아의 기독교는 40%에 이르며, 서(西) 말레이시아는 2.5%로 말레이 무슬림이 강하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76%가 서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으므로 말레이시아의 중심지의 기독교는 소수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는 식민통치 세력의 서구종교, 이주민의 종교로 여기며, 다수 인종인 말레이인(Malays)들은 무슬림이다. 그러므로 테러와의 전쟁도 서구식민 세력과의 전쟁으로 보고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전쟁으로 여겨 종교전쟁, 즉 지하드(Jihad, 성전)로 여기고 있다.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재 발흥”(Islamic Fundamentalist Revival)운동으로 “다콰운동“(Dakwah Movement)을 일으키고 있다. ”다콰“(Dakwah)는 ”선교"(Mission)란 뜻으로 이슬람 교리와 신앙생활을 삶 속에서 신실하게 지키며, 이슬람을 증진시키는 자발적인 운동이다. 다콰운동은 말레이시아에 이슬람의 신앙 수준을 높이고 심화시키는데 공헌하고 있으며, 이슬람을 증진시키려 다방면으로 선교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정부의 정책과 통계일 뿐 실제로 말레이시아 원주민인 동 말레이시아 사바(Sabah), 사라왁(Sarawak) 주민들과 서 말레이시아의 최초 원주민인 오랑 아슬리(Orang Asli)는 무슬림이 아니다. 말레이족(Malays)은 무슬림으로 다수인종 일 뿐이지 저들도 이주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를 서구 식민 제국주의의 종교, 이주민들의 종교로만 여길 수는 없다.

  
▲ 사라왁 기독교연합 집회-신앙결단 구국기도회-東말레이시아(보르네오 섬)

 

3. 말레이시아 기독교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공식 종교로 하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교리와 생활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지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고 있다. 예수를 선지자로 여기며 죽지 않고 승천하였다고 믿고 가르치며, 복음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등 기독교에 대해서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줄 알면 이는 중요한 오해이다.


    무슬림은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고,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전능하시고 유일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키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될 것을 왜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도 부활도 없는 것이다. 무슬림은 예수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예언자라 할지라도 유대인을 위한 이슬람 선지자 중 한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무하마드만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유일한 마지막 결정적인 예언자로 하나님 계시의 완성이라 믿고 있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을 강조하며 지키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로 예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무익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이슬람권 말레이시아에서 십자가와 부활절을 지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독교의 시작은 성탄절이 아니라 부활절이다. 기독교는 성탄절 보다 부활절에서 특성이 드러난다. 성탄절은 세계문화현상이 되어 예수 없이 선물 주고 인정을 나누는 절기로 세속화되어 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구원의 신앙이다.


      둘째는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에서 친밀한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은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하셨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친밀한 친구관계 임을 성경은 가르켜 주고 있으며(대하20:7, 출33:11). 예수님도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11:19, 눅7:34)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7-40)하셨고,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셨다.(요15:15).


    바뚜말레이 박사는 “말레이시안 신학“을 ”무히바“(Muhibah, Friendship), 즉 ”우정“이라 하였고, 이를 ”이웃신학“(Neighbourology)이라 하였다. 말레이시아 신학대학의 알버트 월터 교수(Rev Dr, Albert Walter)도 말레이시아에서 “친구로써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했다.


    세째로 말레이시아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타인을 위해 사는 삶”임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받고, 희생으로 자신을 주는 진실한 친구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잠부나탄(Rev K. Jambunathan)목사는 이런 신앙을 "바나나"(Banana)로 묘사하였고, 알버트 월터 교수도 말레이시안 신학을 “바나나 신학“이라 하였다. 바나나는 예수의 희생적인, 자기를 내어 주는 삶의 상징이라 하면서, ”바나나는 아시아에서 자기를 내어 주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다.


    바나나는 말레이시아 전역에 흔히 자라는 식물로 자신을 주는 상징이다. 바나나 나무 대부분은 먹을 수 있고 버리는 것 없이 사용된다. 바나나 잎은 음식을 담는 식기로 쓰이며, 비 올 때는 우산이 되고, 바나나 꽃은 나물을 해 먹고, 바나나 나무와 잎은 의식과 잔치 때 장식품으로 쓰인다. 바나나 열매는 세계인이 즐기는 음식 자료가 된다. 바나나는 종교 문화 축제 때 항상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구주이시다.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교회절기와 신앙생활에서 인종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 관습과 연계되어 절기를 지키고 있다.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단순한 서구 기독교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교회라 할 수 없다.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하셨다. 기독교는 어떤 특정 지역의 종교나 문화 현상이 아니다. 결코 기독교는 서양식민 통치자들의 종교가 아니며 서양종교, 서구문화 현상이어서도 안되다.


    이 점에서 오늘날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기독교인”(Christians in Malaysia)이 아닌, “말레이시아의 기독교인”(Christians of Malaysia)을 고민하며 추구하고 있으며,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으로 “말레이시안 신학”(Malaysian Theology)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바뚜말레이(Rev Dr, S.  Batumalia), 화용(Rev Dr, Hwa Yong, 華勇), 헐만 싸쓰트리(Rev Dr, H. Sastri), 알버트 월터(rev Dr, Albert Walter)등의 신학자들과 교계지도자들이 모색하고 있다.(14)


    한국 기독교는 말레이시아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함께 십자가와 부활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며,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 쿠알라룸푸르, “다만사라 감리교회” 주일예배 찬양(Damansara Utmana Methodist Church.DUMC))-西말레이시아(말라야)

 

4. 맺는말: 동남아 이슬람과 한국기독교 선교방향

 

    오늘날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말레이”(Malay) 인들은 3억5천만 명으로 95% 이상이 무슬림들이며, 3억3천 만 말레이 무슬림 주민들이 동남아 이슬람의 중추세력을 이루고 있다. 즉,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부르나이, 싱가포르, 필리핀과 태국남부의 무슬림들이다.(15)

  
▲ 라마단 중-하리라야 준비하는 말레이 인들(쿠알라룸푸르)

   

  동남아시아는 수많은 섬으로 이뤄져 한 번도 중앙집권적 왕국이 형성된 역사가 없는 지역이며 다인종 다문화의 지역으로 종교다원주의(Pluralism) 사회다. 이슬람이 이 지역의 대다수 종교이기는 하나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h)와 하디스를 중심으로 세워진 이슬람 국은 아니다. 동남아 이슬람은 전통문화에 적응되었으며 신앙의 내면화를 이루는 슈피(Sufi) 이슬람으로 온정적이며 평화를 추구하는 “민속 무슬림”들이다. 그러므로 동남아 지역의 무슬림들은 개방적이며 상호 존중하고 이해할 줄 아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
 
    이슬람화 시키려는 움직임이 서구 식민 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동조를 받는 것 같지만 이 지역의 전통과 중심 세력이 아니다. 또한 반기독교 감정이 서구 식민통치자의 종교로 여겨져 이슬람을 더 퍼지게 하고 강하게 한 점은 있지만 분명한 것은 기독교를 배척하는 반기독교 지역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분쟁은 기독교-이슬람간의 분쟁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를 정치적인, 세속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용하고 부추키는데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집단 이기주의와 같은 “종교공동체주의”(Communalism)이다.(16)


    마치 한국 사회의 병폐인 지역주의가 정치적 세속적 욕망을 채우려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그 지역을 위하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필리핀의 모로(Moro)들도 교회를 공격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며 정부 기관과 서구 단체인 것이다. 인도네시아 인들도 기독교인 마을을 파괴하고 교회를 불사르며 성직자들을 살해하는 폭동을 매스컴 통해 볼 수 있지만 이것도 자세히 보면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이들의 책동인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첫째, 한국 기독교는 우선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동남아 이슬람을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에 대해 물리치고 정복해야 될 기독교의 적으로 여겨왔고, 기독교의 이단으로 여겨 왔다.(17) 한국 기독교는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무슬림과 저들의 신앙을 이해해야 한다. 결점을 찾아 논박하고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신학 대학에 아시아 이슬람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시급히 개설해야 하며 연구소를 두어야한다. 교단 본부에도 아시아 이슬람 위원회 및 정책 기구가 설립되어 복음 선교 뿐 아니라 기독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둘째, 한국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복음의 삶을 함께 살아야 한다. 서구화의 옷을 벗어버리고 복음을 드러내야 한다. 예수의 사랑과 구원을 전하기 위해서는 저들 속에서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는 우물가의 여인을 인종적 편견이나 종교적 우월감으로 대하지 않았다.(요4:1-26). 예수님은 그녀의 고달픈 삶을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셨다. 예수님의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눅10:25-37).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의 상처를 보았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려하지 않았다.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같은 동족인지 피부가 어떠한지, 신분이 어떠한지, 재산이 어떠한지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무슬림들이 들고 있는 무기와 주먹만 보아서는 안 된다. 저들의 삶과 상처, 아픔을 보고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18)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인간 그대로를 영접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한국 기독교는 동남아 무슬림을 교리와 경전(꾸란), 사상으로 대할 것 아니라 실제적인 사랑의 삶으로 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슬림도 사랑한다고 믿는가? 예수님 주신 계명은 “첫째는 이것이니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니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라 하셨다. 이는 무슬림도 힘써 지키는 신앙이며 신앙의 핵심이다. “무슬림”(Muslim)이란 뜻 자체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이다. 기독교는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이어서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29-31) 말씀하셨다.  이슬람은 현실 실제적인 삶 속에 구현된 신앙체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 기독교는 개발, 경제성장, 발전, 축복에 있지만, 이슬람의 관심은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이들에 있다. 이슬람은 단결된 것 같아도 그렇지만은 않다. 저들도 약하고 분열되고 인종과 빈부, 사회적 신분 갈등으로 문제가 많다. 정치 안정과 경제발전, 어린이와 청소년, 여성과 가정문제 등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저들도 평화롭게 살기 원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기 원한다. 한국기독교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무슬림들과 만날 준비 되어 있는가? 오늘날 지구화시대 무슬림을 외면할 수 있는가? 이웃과 친구로 교류와 협력을 넓히고 진솔한 삶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무슬림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아왔는가? 서구의 시각을 가지고 이슬람에 대한 이해도 없이 정복하고 개종시켜야할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는가? 무슬림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있는가? 죄인의 친구 되셔서 함께 먹고 마시며 친구 되신 예수님처럼 무슬림들을 친구로 사귀였는가? 한국기독교의 이슬람 선교 정책과 자세는 무엇인가?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본받아 십자가의 삶을 살며, 무슬림을 친구로 사귀고 있고, 우리가 사랑해야할 이웃으로 여겨왔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들에게 현실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우리도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rch)


  
▲ 갈등에 휩싸인 무슬림-그 심정은 어떠할까?-누구가 친구, 이웃이 되어줄까?
  
  
▲ 말레이 무슬림사회-인간기본권, 자유의 외침은 깊어지고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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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S.Q. Fatimi; Islam Come aspects of Sufism as understood and and practised  among the Malays, S'pore: MSRI,1963. P69
2. Hussin Ali; The Malays, Their Problem and Furture, KL: Heinemann Asia 1981. p48-49
3. Ibid, p11-12
4. S.Batumalai; Islamic Resurgence and Islamization in Malaysia, Ipoh; Chares Grenier,1999. p25.
5. Syed Naguib al-Attas,; Some aspects of Sufism as understood and practised  among the Malays, Singapore; Malaysia Sociological

   Research Institute LTD,1963. p21-25.
6. Ibid, p20.
7. Ibid, p34-39.
8. M. Nasir Tamara: Indonesia in the Wake of Islam, KL: Institute of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1968. p1.
9. Ibid
10. Hussin Mutalib; Islam in Malaysia, Singapore Univ, 1993. p11.
11. Ibid, p1.
12. 노종해: 東南亞이슬람과 韓國基督敎 敎宣, 서울, 성서연구사 2002. p56-58.

     cf, 류승완:“말레이시아의 이슬람, in 양승윤(편); 동남아의 이슬람, 한국외대,2000. p77.
13. Robert A. Hunt; Islam in Southeast Asia, a Study for Christians, Malaysia:GBGM,1997. p30.

     cf, 노종해, 말레이 그들은 누구인가, 서울, 글마당 211. p24-25.
14. 말레이시아 기독교 신학과 이슬람에 대해서는, 아래문서를 참고하라.
   -Batumalai, S.: A Malaysia Theology of Muhibbah, Petaling Jaya, Malaysia, 1990.
   -Hwa Yung : Mangoes or Bananas?, The Quest for an Authentic Asian Christian Theology, Oxford, regnum,1997.
   -Albert S. Walters : We Believe in one God?, Reflection on the Trinity in the Malaysia Context,  Delhi, ISPCK, 2002.
   -Robert Day McAmis : Malay Muslims, The History and Challenge of Resurgent  Islam in  Southeast Asia,

     MI: Wm B. Eerdmans Publishing, 2002.
15. 말레이시아 셀랑오 샤알람에 있는 "말레이 국제사무국"(Malay International  Secretariat)은 “말레이”(Malays) 인이 3억5천만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흩어져 있는(디아스포라) 말레이 2천만 명은 수리남 공화국(Suriname, 남미북부), 남아프리카, 마다가스카(Madagascar,아프리카 군도 공화국), 스리랑카, 오스트랄리아 군도 등에 분포되어있다. 

   cf Asiapac Ed; Gateway to Malay Culture, S'pore, ASIAPAC Books 2003. p1ff.
16. 노종해: “동남아 이슬람-기독교 분쟁지역과 한국 기독교“, 기독교사상 520호(2002.4.) pp52-55.
17. Hugh Goddard: A History of Christian-Muslim Relations, Edinburgh Univ, 2000. p38-39.

     (H.Goddard 는 이슬람을 기독교의 이단이라 최초로 논한 이는 칼케돈 회의 직후 John of Damascus,675-749 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