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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이야기

동남아 화인(南洋 華人)의 삶과 기독교

동남아 화인(南洋 華人)의 삶과 기독교
 
노  종  해(CM리서치 )
 


*화인들이 드나들던 말라카 강-더치지역과 죤커, 바바뇬냐 지역을 잇는 다리에서

    화인(華人)들이 동남아시아(南洋)로 나오기 시작한 때는 중국인들이 본토를 떠나 해외로 나가던 14세기부터 이다. 중국 남부지방인 광동성(Guangdong)과 복건성(Fujian)지역 인들이 남양(南洋), 즉 남해(南海)를 따라 삶을 향해 개척해 나간 것이 화인역사의 시작이다. 이들은 베트남, 보르네오, 필리핀 군도를 거쳐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져 나갔고 가족과 혈연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개척해 나갔다. 화인들은 동남아시아를 “남양”(南洋)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은 막 노동꾼들로 서구인들로부터 "쿨리"(coolies)라 불리웠고, 부두 노동에서부터, 농장, 짐꾼 등 막일에 가릴 것 없이 몸 부딪쳐 일한 사람들이다. 말레이시아 화인 지도자는 이들에 대해 "피와 땀으로 빵을 얻었다"(They had in their bread with sweat and blood)고 설명하고 있다.(Asia Week, Aug 24, 1994)
 
    남양 화인(南洋華人)들은 단신으로 해외 나와 죽을 고생을 감수하며 일하였고, 가족 형제들을 부르기도 하며 찾아 나오기도 했다. 길가 노점식당을 열고 가게를 내었으며 밤낮 가리지 않고 쉴 틈 없이 일하였다. 해외 생활에 익히면 가지 뻗어 가듯 형제자매, 인척들이 주변에 독립하여 삶의 터전을 개척하여 오늘날 거대한 화교 기업, 자본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꽁시"(Kongsi,公司) 조직을 가지고 가족, 혈연, 지연, 동업관계에서 독특한 상업조합을 형성해 상부상조, 상호 협력하여 자본을 증대 시키며, 화인사회(華人社會)의 질서를 수립해 나갔다.


 

*바바 뇬냐 지역으로, 말라카의 역사문화특구로 되어 있다.

    특히 화인들 중 현지 말레이인과 결혼하여 혼혈자손인 '뻐라나깐'(Peranakan)들은 바바와 뇬냐'(Baba, Nyonya)로 동서융합의 화려하고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서구 식민통치시대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미션스쿨에서 교육을 받았다. 영어와 말레이 현지어를 구사하며 동.서양의 중계 위치로 산업과 정치사회 중심세력이 이루었고, 세력을 확장시켜 지도자로 신분을 향상시켰으며, 뻐라나깐들은 동남아시아(남양) 기독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바바뇬냐(Baba Nyonya) 버라나칸들의 기독교회는 영어, 말레이어 교회로 동남아 기독교의 중심 주체로 세계 선교와 국제 교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교회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이들 화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력은 중국 본토 해외 투자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 홍콩 중국의 외환 보유고 만해도 1천7백억 달러(92년말)로 이는 미국과 일본의 외환 보유고를 합한 1천4백40억 달러를 훨씬 넘는 숫자이다. 이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부르나이, 필리핀, 태국 등 남양(동남아시아)각국에 퍼져 있는 화교자본을 합친다면 단일민족으로써 세계 최대이다. 전 싱가포르 수상 이광요는 "전 세계 화교 자본으로 중국을 조직적으로 지원하자"하여 세계에 주목을 받았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는 화교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오늘날 화인들의 움직임은 세계 10대 뉴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양화인(南洋華人)들은 주재하는 지역의 토착민이나 정부의 협력을 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질시와 경계, 배척과 박해를 받았다. 더욱이 본국 정부 즉, 중국으로부터 지원 받은 것도 아니다. 무관심과 냉대를 받아 왔다. 말레이시아 화인들이 얼마나 수난을 당하고 박해를 받았는지는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말라카에는 일본군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추모비가 서 있고, 말레이시아 건국 중에도 공산 게릴라로 몰려 무수히 학살을 당하였으며 감시와 질시 속에 숨죽여 살아온 것이다. 이로인해 화인들은 도시로 몰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말레이시아 정부와 토착민들로부터 경계와 감시, 배척당하고 있으며, 자녀 교육과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묵묵히 감수하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굳굳이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말레이시아 화인 협회"(MCA)를 조직하여 정치의 핵을 이루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화합과 일치"를 구호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미뿌드라(Bumipurta) 정책"으로 토착민들을 보호 우대하는 정책을 각 방면에서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젠 저들의 경험과 자본으로 중국까지 도우며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쿠알라룸푸르의 중화회당-챠이나 타운과 메르데카 스타디움 길을 마주보고 있다.

    남양 화인들은 혈연, 지연 중심의 상부상조 "꽁시" 구조에서 자치 자율 자급의 체제를 발전시킨 "중화회관"(中華會館)을 세워 중국인 문화를 잊지 않고 계승하도록 교육과 중국문화 함양에 힘쓰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차이나타운 부근 국립회교사원과 철도역, 메르데카 스타디움 교차로 중심에 마치 백악관 마냥 서있는 좀 우중충한 건물의 "중화대회당"(中華大會堂)인 "중화회관"(中華會館)을 볼 수 있다.
 
    남양 화인들은 중화회관을 세워 "중국인 학교"를 세우고 지원하며, 중국어와 역사 문화를 잊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가르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중국인들의 이상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격이다. 그들은 나약한 지성인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이를 용감히 실행하는 사람이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즉 중국인(中國人)들의 이상적인 인간상(人間想)은 인격의 3요소인 "지인용"을 지니고,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힘써 자신의 일에 충실(忠實)하며 의(義)를 위해 용감한 사람이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흥사단 4대 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 황당무계할 정도로 용감한 정의 사나이, 뿐만 아니라 정의의 여걸(女傑)이 등장하고 있다. 이 무더운 열대의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체육관을 열고 땀 흘리며 무술을 배우는 사람도 가만히 보면 중국계 어린학생, 청년들이다. 우리나라의 태권도도 한국 교민들은 안 가르치지만 중국계 학생들은 태권도복에 "태권도"(跆拳道)라고 써놓고 남녀가 익히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는 태권도 구호가 한국말이라고 흐믓해 할 때 저들은 앞차기를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중년남녀 노인들도 이른 새벽에 공원이나 집안 뜰에서도 고요히 움직이는 "쿵후", "태극권"을 춤추듯 연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양화인들의 종교는 생활과 삶, 문화의 모든 면에 퍼져있다. 종교를 제하고는 화인들의 삶을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국계 화인 사원에 가보면 불교도, 유교도, 도교도, 아닌 모두가 한자리에 융합 되어 있는 “중국인 종교”(Chinese Religion)이다. 중국인들의 종교 생활은 현실주의에 서 있으며 가만히 보면 신이 아니라 현실인간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저들이 구하는 것은 재물, 돈, 즉 현실적인 힘인 것이다.
 
    남양 화인들의 생활 속에는 유교(儒敎), 불교(佛敎), 도교(道敎)에 조상숭배(祖上崇拜)의 정령숭배(Animism)까지 융합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저들은 조상숭배를 통한 재신(財神)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 화인들의 절기와 명절 삶의 순간순간에 이러한 종교생활과 떼어놓을 수 없다. 복권(福券)을 사고도 향 피우고 합장하며 자녀들을 해외 유학 보내면서도 부적(符籍)을 지니게 하여 보낸다. 집이나 토지를 매입할 때, 상점을 정하고 사무실을 배치 할 때 가구 위치까지 풍수(風水)를 보고 정하며, 출생과 결혼 때 조상 신단에 향 피우고 합장한다. 장례식 때에는 승려를 불러 복잡한 의식절차를 지내며 각종 모임마다 종교의식으로 차있다.
 

*화인연회 본부(CAC)와 교회(Kuala Lumpur, 길룸파위리공회)

    이제 같은 해외교민으로써 우리 한인 디아스포라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더욱 힘써 땀 흘려 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남 아시아인들에게 조국의 국력을 과시하며(?), 경제적인 성장을 자찬 할 때가 아니다. 우리의 기술과 재능에 자만할 때도 아니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상사직원이든 개인 사업이든, 공관원이든 더욱 힘써 연구하고 노력하며 일해야 할 때이다.
 
    해외에서 우리 한인교민들은 외국인, 이주 체류민으로 인생을 즐기며 여유 부리고 살 때도 아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한민족으로 국적 있는 교육, 전통과 역사 있는 교육을 시키며 세계인으로 양육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화인세력은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냉대와 박해, 도움의 세력이 없는 곳에서 "피와 땀"으로 개척한 저들의 삶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남양 화인들이 세계 화교들의 중심이 된 것을 우리는 눈여겨보고 우리 한인 교민들은 조국의 해외개척자로써 더욱 힘써 일하며, 땀 흘려 힘써 일하는 개척자로써 서로를 세우고 붙들어 주며 함께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기독교회는 주님이 주신 세계 선교의 사명을 향해, 동남아 화인 기독교회들과 선교 동반자, 파트너 관계(Partnership)를 공고히 하고 협력하여 마지막 시대 선교사명을 감당해나가야 한다.(盧宗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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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한국인들은 해외 중국인들을 “화교”(華僑)라 익히 알고 있지만 동남아 화교들은 "화인"(華人)이라 한다. 이는 해외 중국인이 아니라 주재하는 나라의 시민으로 주권을 가진 주인이라는 의식이 있는 것이다. 동남아 중국계는 "말레이시안 챠이니스", "싱가포리안 차이니스", “인도네시안 챠이니스” 등으로 칭하며, 독특한 바바뇬냐인 '뻐라나깐'(Peranakan)인들도 있다.)



*쿠알라룸푸르 웨슬리교회(WMCKL)-영어를 사용하는 화인들, 아버지날 이웃초청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