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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의 현상황

"무슬림 이웃과 복음을 나눠요"-(책 제공)

슬림 이웃과 복음을 나눠요

-무슬림에 대한 복음 증언의 실제-

노종해(CM리서치)



머 리 말


오늘날 세계인구는 74억으로 기독교인 22억이나 무슬림 인구는 16억이고, 무슬림 인구 중 대다수는 아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인구 100명 중 기독교인 22명, 무슬림 16명에 해당합니다. 즉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기독교인은 무슬림들과 더불어 이웃으로 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의 무슬림도 20만 명에 달하며,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과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우리는 무슬림들과 교류협력하며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슬림들을 이웃과 친구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이 복음증거 안내서는 최근 한국 국내도 다문화와 이주민 선교로 활발한 것을 보고 “무슬림들과 이웃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세계 선교사들이 세미나와 포럼, 토론을 거쳐 핵심 중점만을 집약한 소책자인 ”Christian witness among muslim“를 기본으로 하여 작성된 복음증거 안내서입니다.


이 책은 수년 동안 선교 현장에서 초임 선교사들이 실제로 사용되어 온 자료이며, 이슬람선교에 헌신의 뜻을 품은 교회나 선교단체, 선교준비 개인이나 그릅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을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서 “무슬림들과 이웃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 복음을 나누기 위한 지침서로 드립니다.


2017년 2월 21일

Kuala Lumpur에서

노 종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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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무슬림 이웃과 복음을 나눠요

-무슬림에 대한 복음 증언의 실제-


머리말--- 2


<목 차>

제1부 무슬림들에게 복음증언의 실제

들어가는 말----4

I. 어떻게 무슬림을 대할까?

제1장 무슬림을 사랑하라

제2장 무슬림에 전 할 멧세지

제3장 복음 전하는 그리스도인

II. 어떻게 무슬림을 이해하며 복음으로 인도할까?

제4장 하나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사랑하라

제5장 하나님은 사랑이라-우리의 아버지

제6장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제7장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8장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제9장 예수, 하나님의 말씀

제10장 하나님의 아들-삼위일체

제11장 성령-교회

III. 어떻게 복음에 관심 둔 무슬림을 도울까?

제12장 성경공부와 기도

제13장 교회와 연결


제2부 복음을 받은 무슬림들의 증언

I.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무슬림들

II. 동남아 무슬림들의 사례와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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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무슬림들에게 복음증언의 실제


들어가는 말

   

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30년 동안 무슬림들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이웃하여 살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쿠알라룸푸르 동남아 선교센터"에는 십자가와 강단이 있는 1층 예배실과 주택과 서재, 손님방, 선교사무실로 사용하는 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마이멈"이란 파출부가 오는데 이 여인은 이슬람 신앙이 돈독한 말레이 무슬림 여성입니다. 말레이 여성들은 보통 칼라풀한 스카프, 뚜둥(Tudung)을 머리 부분만 둘러쓰는데 마이멈은 까만 히잡(Hijab)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쓰고 일하러 오는 철저한 무슬림입니다. 마이멈은 선교센터에 도착하여 우선 일복으로 갈아입고 2층 방과 사무실 복도 등을 청소하고, 아래층 예배실을 청소하며 빨래와 다리미질 등 집안일을 합니다.


어느 날 마이멈은 십자가 앞에서도 주저함 없이 강단과 예배실을 청소합니다. 그녀는 투철한 이슬람 신앙을 가졌지만, 선교사인 우리 집에 와서 일하는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13년째 일하고 있는 마이멈은 이젠 한 식구처럼 다정한 이웃이 되었고, “쿠알라라룸푸르 동남아시아 선교센터”의 열쇠를 가지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무슬림 여성입니다.


이슬람 국으로, 선교사 입국을 불허하는 말레이시아 정부는 한국인들을 위한 "한인교회 목사" 신분으로 목사인 나만 비자를 주고 내 아내와 자녀들에게는 비자를 허가해 주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은 추방 되었고, 아내는 3개월에 한번은 외국에 나갔다 와야 하는 어려움을 이겨나가며 선교사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개월마다 혼자서 지내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마이멈은 한국방문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아픈 심정을 쏟아 놓았습니다. "파더(목사)는 참 좋은 분이십니다. 우리 말레이인 남자들 같으면 3일만 아내가 없어도 딴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데 파더는 혼자 지내니 참 좋은 분이십니다. 말레인들(무슬림들)은 부인이 친정에 가서 한달 이상 돌아오지 않거나, 병이 들어 부인 구실을 못하거나, 아이를 못 낳거나 하면 다른 여자를 얻어 결혼하는데 한국 남자들은 좋습니다"고 말하며, "자기 여동생은 아이가 넷인데 남편이 생활능력도 없으면서 또 다른 여성을 얻어 엄마가 병났다"고 한숨 쉬며 자신의 아픈 심정을 아내에게 드러내었습니다. 과부인 마이멈이 재혼하지 않고 사는 것은 남자들에게 다른 부인과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슬림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종교적 사회적인 편견 없이 인간 삶 그대로를 이해하고 접근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물가의 여인을 유대인 대 사마리아인이란 인종적인 편견과 종교적인 우월성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요4:1-26). 예수님은 오히려 그녀의 고달픈 삶을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마리아인의 비유를(눅10:25-37)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의 상처를 보았지 그가 누구인지는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강도 만난 이가 유대인인지 헬라인인지, 신분이 어떠한 사람인지, 가문과 배경이 어떠한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의 상처를 보았고 자신의 옷을 찢고 기름으로 응급 치료한 후 여관까지 데려다 주고 모든 비용을 감당해 주었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이의 이웃입니까? “자비를 베푸는 자입니다”라 대답했을 때 “너희도 그렇게 하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슬림들의 삶, 아픔과 상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슬림도 하나님께서 사랑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슬람이 강하고 단결된 것 같아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들도 약하고 분열되고 인종과 빈부, 사회적 신분 갈등으로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여성과 가정 문제 등 사회문제도 심각합니다. 우리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 주고, 배고픈 자에게 양식을 주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저들도 우리와 같은 아픔과 상처가 있으며 위로와 사랑의 관심이 필요한 삶 속에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도 무슬림들과 만나야 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나누어야할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I. 어떻게 무슬림을 대할까?


제1장 무슬림을 사랑하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우리가 무슬림들에게 복음증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과오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슬림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오랜 동안 그들에게 무관심하였으며 그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투쟁하며 지내왔습니다. 지금도 기독교인들은 마치 이슬람을 비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과 공무와 사업상 만나지만 거리를 두고 살며 친밀한 친구와 이웃으로 사귀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1. 왜 무슬림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슬림을 사랑해야할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동일한 시민으로 사는 곳이 많기 때문이며, 같은 동네 이웃이나 가족으로까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만나고 함께 살고 있으므로 서로 선한 뜻을 가지고 협력하며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계명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슬림도 우리의 이웃이므로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무슬림을 포함하여 온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햇빛과 비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 모두에게 내리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슬림을 사랑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마5:43-45, 롬5:-8).


2. 어떻게 무슬림을 사랑 할 수 있습니까?


첫째,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친절하게 대하며 무슬림들이 존경하는 이들을 존중히 여겨주어야 합니다.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며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업상의 관계를 성실히 수행하며 무슬림들이 혹시 실수했다 하더라도 용서하며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무슬림에게 실수한 일이 있다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무슬림들과 서로의 평화와 복지, 발전을 위해 협력함으로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며 병들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동정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둘째, 무슬림과 그들의 신앙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비 기독교인들을 비난해야만 하는 줄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입니다.(눅6:37을 보라). 우리가 더 좋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을 굳게 지키되 다른 종교인들에게는 박애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들(눅9:53-55, 10:29-37, 17:11-19)과 이방인들(마8:5-13)에게 어떻게 대하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무슬림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이웃으로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첫 걸음이 됩니다. 결점을 찾아내기 위해서 이슬람을 보지 말고, 무슬림의 삶을 먼저 이해하려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무슬림에게 예수를 말해 주세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이란 말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을 사랑 합니다.”고 말할 때 그들은 우리가 타협하려는 줄로 알 수 있으며 복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는 가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슬림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값진 것을 가지고 있으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무슬림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이 분명하게 알기를 원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할 뿐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도록 전해야만 합니다.(눅24:47, 마28:19,20과 비교하십시오)


제2장 무슬림들에 전할 멧세지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4:5)


1. 우리는 “나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우리가 복음 전할 때 어떤 우월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전도는 “내가 당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도(Preaching)는 “내가 놀라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당신과 나누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전도”는 종교적으로 우월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내 종교가 당신의 종교보다 더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복음의 일부분도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전도하는 사람 자신들의 또 다른 잘못은 항상 전하기만 하고 듣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들으시며, 어떻게 빌립이 에티오피아인의 말을 듣는지 주의해 보십시오(요4장, 행8:26-38). 무슬림들에게 전도하려는 사람은 무슬림의 심정과 생각, 감정을 헤아리며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며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복음전도는 “설교”(Preach)가 아닌, “복음을 전달함”(Giving Message)이며, ”그리스도를 증거 함“(Witnessing for Christ)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우리의 증거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무슬림들에게 어떤 멧세지가 필요할까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동일하며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단지 예배하는 의식과 습관이 다른 것일 뿐이므로 무슬림들에게 복음 전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잘못입니다. 우리는 무슬림들이 우상을 거부하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은 그들의 신앙이 우리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무슬림들도 예언자로서 예수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님과 구세주로서 알지 못합니다.


둘째,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셋째,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합니다. 무슬림은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을 수 없고, 인간존재는 그분의 노예요 종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복음서를 존경한다 할지라도 주님과 구세주 되신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알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도 경건한 종교인들이며,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께서 주님 되시며 구세주 되심을 그들에 전하라고 사도들에게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무슬림들이 신실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이루시는 위대한 일을 그들도 듣고 믿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하는 이가 없다면 어떻게 세상이 그것을 알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화목케 하는 말씀(메세지)을 우리에게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람들에게 말씀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대사(”ambassadors)로 삼으셨습니다.(고후5:19,20) 할렐루야.


3. 우리는 예수를 위하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구주되시는 예수님은 인간의 발을 씻으시려 엎드리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우월 의식을 피하기 위해 거듭거듭 상기해야 할 말씀입니다. 당신은 무슬림들을 섬길 수 있습니까?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무슬림들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신앙을 타협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과 상종치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봅시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9:19-23)라 하였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라는 말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자들과 우상숭배하고, 술고래들과 술 마시라는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에 거스르는 것을 행해서도 안 되며 더욱이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를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타협이 아니라 사랑을 보이고 섬기며 가능한 모든 것을 행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사람들이 알도록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타 종교인들을 접할 때 흔히 범하는 잘못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적개심과 공격적인 자세입니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계명에서 금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을 타협하거나 침묵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섬김으로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제3장 복음 전하는 그리스도인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4-25)


디모데후서에서 사도바울은 젊은 전도자에게 “어떻게 진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서 13절까지 바울은 우선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구세주 되신 예수에 대한 믿음의 중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후 19절로 22절까지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한 행실에서부터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 24-25절 말씀에서 바울은 어떻게 주의 종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다툼으로 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해야 합니다


“말다툼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딤후2:14)고 하였습니다.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나 아무 유익 없이 끝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다툼을 피할 수 있을까요?


첫째, 다툼을 일으키는 자세를 피해야 합니다. 무슬림들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옳고 무슬림이 잘못 됨을 증명하여 설복 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서로 관심을 친근감 있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이루신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래 참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무익한 다툼의 주제를 피하십시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을 공격하고, 꾸란을 비판하며, 무슬림 사회 윤리를 비난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접근입니다. 이러면 당신의 멧세지에 대해 무슬림을 더욱 굳게 만들며 그들이 성경과 기독교 사회를 비판으로 응수해 오도록 자극하는 것일 뿐입니다.


셋째, 다투기 쉬운 장소를 피하라. 번잡한 공공장소에서 종교 토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입니다. 조용한 곳이 더 적합한 장소입니다.


2. 가르치기에 적합한 이여야 합니다.


다음은 잘 가르치는 몇 가지 원리입니다.

첫째, 청중을 이해해야 합니다.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수학만 잘해서 되는 것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해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성실하게 묻고 응답을 들어야 합니다.


둘째,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이미 무슬림들이 알고 있는 데서 시작하십시오. 즉, 한 분이신 하나님, 예언자, 스승, 치료자로서 예수, 마지막 심판, 기도, 윤리 등 무슬림들이 잘 알고 있는 거기서부터 시작하십시오.

무슬림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주제에서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들 등). 그들에게 우리는 세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아들이 아님을 조용히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셋째, 치근 차근 나가십시오. 한 번에 한 가지 주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무슬림이 많은 주제를 혼합하여 묻는다면 가장 적합한 주제를 먼저 선택하십시오. 대화와 토론에 대해 공손하게 답하고 다음날이나 후에 만나자고 하십시오.


넷째, 당신이 모르는 것이라면 모른다고 하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도 의문이 되는 것이라면 답하지 말고 더 알아보고 후에 답하겠다고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3. “참으며, 거역하는 자에게 온유함으로 정정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당신의 증언에 반대하고 복음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인내와 온유함이 필요합니다. 만일 무정하고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났다면 “실례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다투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도록 힘씁시다” 고 부드럽게 말하십시오. 곤란한 상황에서 침착함과 인내함을 잊지 마십시오.


4.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회개할 기회 주사... 진리를 알도록“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이 듣지도 않고 개종하지도 않는데 시간 낭비하는 것뿐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슬림을 “회심(개종)”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심(개종)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논쟁으로 믿게 만들 수 없습니다. 논쟁을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메시지를 가로막는 장애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습니다. 그분은 진리를 누구에게나 알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사랑으로 증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 후 하나님 자신의 역사에 맡겨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무슬림들이 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선언하기까지는 많은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큰 사랑과 인내함으로 신실함을 보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5. 항상 기도 하십시오


무슬림 친구와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의 건강과 풍성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토론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인도하시며, 성경말씀과 같이 성령께서 저들의 심령에 임하시고 진리를 아는데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진실하도록, 항상 그리스도의 풍성한 지혜로 인도함 받도록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II. 어떻게 무슬림을 이해하며 복음으로 인도할까?


제4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니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29-30)


1. 무슬림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유일성.- 무슬림들은 알라 신 외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습니다.(la ilah illa-llah). 이슬람에서 가장 큰 죄는 알라 신 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이며, 알라 신과 다른 신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인간 삶의 목적은 오직 알라 신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의식.- 무슬림들은 “하나님께 예배”라 하면 기도와 금식 등 의식을 생각합니다.(의식과 외적 행위). 그러나 예배는 의식행위 보다 더 한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여기에서 무슬림들이 당황하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리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분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하는 것입니까? 되묻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증거


첫째, 무슬림에게 우리가 한 분 하나님을 실제로 믿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둘째, “예배”(Worship)와 “섬김”(service) 받으실 예수님의 교훈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심을 나누십시오.


3. 무슬림 이웃과 대화하라


무슬림 “신조”에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슬람은 “신은 알라 외에 없다”(la ilah illah-llah)고 고백함에 대해 질문하십시오.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동의하고 인간은 그분 외에 아무것도 경배해선 안 됨에 대해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증거 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음을 말하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질문하십시오. 그 후 예수님께서 “들으라 첫째는 한 분이신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답변하셨음을 말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기독교에 중요한 것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나는 너를 애급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어다”로(출20:2,3) 시작되는 십계명을 배우며 마음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말하십시오.


그러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신 진실한 뜻이 무엇입니까? 말로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말하십시오. 사탄도 한 분 하나님임을 알고 있으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예배의식에서 엎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엎드렸으나 하나님만이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아신다고 말하십시오.


진실한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말씀하실 때,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둘째 되는 큰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말씀하시며 이것이 크고 둘째 되는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당신의 무슬림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중요한 둘째 되는 계명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친구,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다른 사람을 비평하며 다른 사람의 결점과 악함을 말하고 있습니까? 때로는 한 가족이, 형제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마을과 다른 인종, 서로 다른 사회적 신분 계층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지를 우리는 봅니다.


당신의 무슬림 친구가 사람들이 분열시키는 데에 열중하며 적대하고 있는 실례를 제시해도 좋습니다. 누가 옳은지, 누가 잘 못 됐는지 판단하고 가르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비와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도록 인도 받아야 할 필요 있음을 지적해야 합니다.


4. 실제적으로 중요 점


첫째, 기도하십시오.- 토론하는 중에도 때때로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서로 잘 이해하도록 인도해 주셔서 진리를 듣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삼아 주시고 저의 심령에 당신의 음성을 듣도록 도와주세요.”


둘째, 논쟁은 피해야 합니다.-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 등과 같은 교리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무슬림이 물어 오면 논쟁을 일으키지 말고 간단히 정중하게 말하십시오.

예를 들면, 어느 무슬림이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이 아니라 세신을 숭배하고 있다”고 질문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답하십시오.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 가지 길, 즉 창조주와 말씀과 성령으로서 알도록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왜 당신은 예수를 경배하는가?”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보이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예수님을 하나님 외에 또 다른 신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셋째, 친근감 있는 용어를 사용하십시오.-무슬림들에게 친밀한 이름을 칭하거나 표현 할 필요 있습니다. 즉, 알마시(alMasih) 혹은 아나비 이싸(annabi Isa, 예언자 예수, 예언자 보다 더 크신 분을 칭함), 아나비 무싸(annabi Musa,예언자 모세), 이브리스(사탄) 등등


넷째, 성경을 권하십시오.- 당신의 무슬림 친구가 성경 대한 관심이 일어나도록 토론에 성경을 사용하십시오. 성경에 대해 따지듯이 하지 말고 경외감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성경을 펴서 보여주며 말씀 부분을 보여 주십시오.


제5장 하나님은 사랑이라-우리의 아버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 다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15:2-4)


1. 무슬림을 이해합시다


첫째,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알라흐 아크바르”(Allahu Akbar)는 무슬림 기도와 모든 일상생활에서 거듭 되풀이 되어 고백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에 이어 그분의 위대함이 무슬림의 하나님 신앙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에 대한 우리의 인식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권능과 지혜, 능력이 무한하시며 위대하신 분으로 그 분과 비교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가?.-이슬람에서는 분명치 않습니다. 꾸란은 하나님을 “자비하신 분”, “사랑의 하나님”이라 부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선한 사람은 사랑하시고 악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되풀이하고 있습니다.(Sura3:140, 134).

이러한 주제에 대해 무슬림들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무슬림들이 하나님의 사랑 개념을 다소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즉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러한 사상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오직 성서에서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롬5:8, 요일4:8)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신가?.- 꾸란과 하디스(전승), 무슬림 경전들은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습니다. 무슬림들은 육체적인 아버지 되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하나님께서 여성과 관계 맺으시고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신앙사상은 심히 불경스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불경스럽다고 비난합니다. 또한 많은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인간 존재로 전락시켜 비교하여 아버지라 한다고 분히 여기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증언 방식


“하나님의 아들” 이란 주제는 종종 많은 논쟁을 일으킵니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꾸란에서 하나님께는 아들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두고 있으며, 당신의 설명을 듣는 것조차도 대단히 괴로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신시키려고 대화를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에 특히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대해서 시작하십시오. 그 후 사랑하는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으로 인도하고 당신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신뢰하는 의미를 말하도록 하십시오.

3. 무슬림 이웃과 대화


첫째,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 속담에 “까마귀 있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란 말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 시대 유대 사람들의 격언에 “흰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팜유(Palm-oil) 가게에 가지 않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거룩한 분, 종교 지도자는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과 달라야 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경멸받고 죄인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놀랐고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양과 목자에 대한 생각을 그들에게 물으며 설명하였습니다. 어느 목자가 우리에 양 일 백 마리 중 아흔 아홉 마리가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만족하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진실한 목자는 한 마리를 잃었으면 찾을 때까지 찾으러 나갔던 것입니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눅15:1-7).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이 계속 죄 가운데 있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에서 그들을 구하기 원하시며 그래서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눅19:10, 막2:17).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버지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탕자”로 알려진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알기 원하셨습니다.(눅15:11-32, 특히 24절을 보라). 많은 무슬림들도 아주 매력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무슬림 친구에게 성경을 찾아 보여 주십시오.


이 이야기에 대해 토론하십시오. 아들이 제 멋대로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며 자기 좋을 대로 악을 행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 아버지는 아직도 그를 사랑할까요?. 아마도 세상의 아버지들도 다시 돌아 온 것을 기뻐하며 좋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 아버지의 사랑 보다 더욱 더 위대하심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 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라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내를 가지고 자녀를 낳는 다는 육체적인 인식에서 아버지 되지 않는다고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하여 결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라고 가르치실 때에는 하나님 사랑의 위대성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사람들도 어떤 이에 대해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자신을 낳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으로 돌보아주기 때문이며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아버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쁨.- 우리가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을 당할 때, 악에 의해 시험받을 때,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절망하고 탄식하며,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는가?” 하며 이상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심판 주되시며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녀를 돌보는 좋은 아버지보다 더욱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모든 악한 권세보다 더 강하십니다.(롬8:35-39).


예수님의 생애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신뢰하는 실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배신하여 대적자들에게 넘겨져 수치와 고난 받을 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기도하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 이다”고 기도하셨습니다.(눅23:34, 46).


4. 실제적으로 중요한 점


첫째, 어느 무슬림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질문하였다면 간결하게 친절히 답하고 가능하면 증언의 중점으로 향하십시오. 예를 들면 물론 우리는 은유와 비유로써 ”아들“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아들“, ”조국의 아들“ 등으로 흔히 말합니다. 이는 진리가 아내를 가지고 자녀를 낳는다는 의미가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은 육체적이 아닌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 사랑 안에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요일3:1)


둘째, 아버지를 믿는 어린이에 대해 “비추어” 준비하십시오. 예를 들면 어느 어린 소녀가 난생 처음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그 배의 선장이었습니다. 항해 중 큰 폭풍이 몰아쳤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뒹굴며 소리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딸은 고요히 웃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어떤 사람이 “애야, 너는 두렵지도 않니?”라고 물었을 때 이 소녀는 “내 아버지가 이 배의 선장입니다. 아버지도 제가 여기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의 세상 아버지들은 항상 나를 보호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세지를 믿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심으로 어떠한 폭풍이 몰아쳐 와도 우리는 그분이 “배의 선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심을 믿습니다.


셋째, 용어에 있어서 무슬림들에게 “사랑”이란 말을 하나님의 사랑에 적용하여 시작하지 마고, 무슬림들이 친근하게 사용하는 하나님의 ”자비”란 말로 시작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또한 마5:44, 45, 6:25,26,과 31-33, 7:9-11, 롬8:14-16, 히12:5-11을 상고해 봅시다.


제 6 장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 하사...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6-38)


1. 무슬림을 이해합시다


첫째, 하나님의 사자(Messenager). 무슬림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자(메신저)를 보내어 특별한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음을 믿고 있습니다. 노아, 이스마엘, 모세 등 예수와 무하마드는 모두 사자(rasul)요 예언자(nabi)라 불립니다. 무슬림들은 이러한 분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으며,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동일한 소식을 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분들은 자신들이 전한 소식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둘째, 무하마드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하고도 결정적인 계시로써 쿠란을 받았으며 “예언자들의 결정”이라 믿습니다. 또한 무하마드의 생애와 교훈은 인류가 따라야 할 완전한 모본으로 믿고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위대한 무하마드도 “순수한 인간 본성을 지닌 한 사람“일 뿐이라 주장합니다. 무하마드는 결코 어떤 위대하신 신이나, 작은 신도 아니며 숭배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기도하거나 그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해서도 안 됩니다.


셋째, 이싸('Isa,예수), 마리아의 아들(ibnu Maryam), 메시야(alMasih)는 꾸란과 하디스(전승)에 90구절 넘게 표현 되어있습니다. 예수는 축복 받고 경건한 분이며 지상과 천상에서 존경받을 분으로 하나님과 긴밀한 분들 중 한 분으로서 예언자요 사자(messenger)로 불립니다. 꾸란은 그의 출생이 가브리엘을 통해 마리아에게 전해졌고, 처녀로서 초자연적으로 잉태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소경과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심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진리로 인도하는 인질(Injil,복음)을 예수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를 믿는 제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거절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도 부활의 날까지 두신다 했습니다. 무슬림들도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과 ”하나님의 영(Spirit of God)“이라고 예수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예수도 다른 사자(예언자)들과 같은 분으로 죽어야할 운명을 지닌 피조된 인간이며 종 이상도 아니라 믿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나 주님,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불리 울 수 없으며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신이나 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으며, 신실한 무슬림들은 무하마드를 모든 세계를 위한 결정적인 사자요 최고의 존재라면서도 예수도 흠모하고 존경해야 할 분으로 여깁니다.


2. 그리스도인의 증언 단계


우리들에게 문제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슬림들은 예수를 존경하나 기독교 신앙에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 함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무슬림의 오해를 피할 수 없으며 그들은 당신의 설명을 거절할 것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고백하여 첫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 많은 날들을 예수님과 동행하며 삶을 살펴보았습니다.(마16:13-17).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증언의 첫 단계는 무슬림 친구에게 특히 꾸란에 기록된 사실을 설명하며 예수의 생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친구가 예수의 말씀과 생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될 때 그분은 보통 사람 이상이며, 한 위대한 예언자에 불과한 분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무슬림 이웃과 대화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신 것을 우리에게 명하심을 보았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과 의식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가르쳤을 때 이는 새롭고도 충격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죄인들, 경멸함 받는 이들과 친구 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며 그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중지할 수 없으신 하늘 아버지란 새로운 개념을 준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꾸란과 예수의 생애 사건을 토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당신의 무슬림 친구에게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십시오. 마1:18-25과 눅 1:26-56, 2:1-40에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읽어주어 듣게 하고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꾸란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영을 마리아에게 넣어 주었고 그녀의 아들이 온 세상의 징표로 지으셨다”고 합니다.(수라21:91).


둘째, 꾸란은 세례요한(Yahya)을 예언자로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출생 이야기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증언을 토론해 보십시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들매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3:16)


셋째, 꾸란(수라3:49,43)에는 예수께서 소경과 문둥병자를 치료하시며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고 말하나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무슬림들에게 막1:40-45(문둥병자), 막10:46-52(바디매오)와 눅7:11-17(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같은 이야기를 알려 주면 기뻐할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기적을 일으키는 자”나 마술가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적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징표”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임하였음을 보았습니다.


예언자들은 메시야의 오신 징표를 눈 먼 자가 눈 뜨며, 저는 자가 걷고, 벙어리가 찬양 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구원의 큰 날, 은혜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바로 이러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사35:5,6. 61:1,2. 눅4:16-22, 7:18-23, 11:20).


4. 실제적으로 중요한 점


첫째, 절충하지 마십시오.- 무슬림들이 때로는 절충하는 친밀한 자세로 물어 올 수 있습니다. 즉 “너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만 포기하면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하나님과 예언자 예수, 그러면 우리와 별로 차이 없음을 동의 할 수 있다.”는 등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러한 선한 의도에 고맙지만 성경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중 어떤 부분을 “포기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줘야 합니다.


둘째, 꾸란으로 복음을 증명하려 하지 마십시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차이점을 없애려고 꾸란이 기독교 신앙을 받쳐주는 것처럼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동일한 구절들을 짜 맞춘다면 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꾸란으로 삼위일체를 증명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나님의 아들이심까지도 증명할 수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허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무슬림들이 성경을 허위로 오용한다면 우리도 약 오르는 것처럼 이는 무슬림들을 분하게 하고 괴롭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꾸란이 성경과 동일한 것처럼 거짓된 인상을 주게 되어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셋째, 무하마드의 성품을 공격하지 마십시오.-무하마드는 “심판자”가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눅6:37) 이렇게 하면 무슬림을 화나게 만들고, 옹호하는 결과 밖에 안 됩니다.


거듭 말하지만 예수와 무하마드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첫째, 이는 무슬림을 항상 도사리고 방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정당한 일이라고 느끼지만 무슬림들은 무하마드를 공격한다고 느낍니다. 둘째,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주님과 구세주)는 이슬람에서 무하마드의 위치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오직 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절충이나 타협은 잘 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절충하거나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예수의 기적과 동정녀 탄생을 “설복‘ 하려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심을 증명하려고 열심을 냅니다. 이는 논쟁적인 분위기만 일으킬 뿐이며 무슬림들을 설득시키지도 못하게 됩니다. 첫째, 다른 예언자들도 기적을 행하였기 때문이며, 둘째, 아담 또한 인간적인 아버지 없이 기적적으로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기적을 신성의 “증명”으로 사용한 적이 없음을 주의해 보십시오.(예, 마4:6,7). 우리는 당신이 성경적인 증언에 더 밀접하기를 권고합니다. 기적은 예언 성취의 “징표”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징표입니다.


제 7 장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1).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15:3)


1. 무슬림을 이해합시다.


첫째, 그리스도는 죽었습니까? -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그를 그의 보좌로 이끌어 올리셨다고 듣고 있습니다. 아흐마디스(Ahmadis)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다시 살아 내려와서 그의 불명예를 회복하고 120세까지 살았다고 주장합니다.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지 않습니다.


둘째, 사람에게 대속적인 희생이 필요합니까? - 무슬림들도 자신들이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반적인 신앙은 선한 행위(기도, 금식, 자선 등)로 자신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선한 행위가 죄 사함 받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으로 마지막 심판 때에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우리의 죄를 위해 누구도 죽을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구속자가 필요합니까? - 이슬람은 하나님의 절대 자유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려 할 때 어떤 대속자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용서하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의 증언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는 귀중하지만 무슬림들에게는 실제로 혼란스런 것입니다.(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기 어려웠음을 기억하십시오, 마16:21-23). 그러므로 우리의 증언의 첫 단계는 십자가 사건을 간략히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좋습니다. 그 후 십자가 사건의 본질적 의미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증언은 다음 세가지 방면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첫째, 사람들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핍박했으며 어떻게 그를 죽이려고 모함했습니까?(무슬림들도 이 사실은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는 스스로 십자가로 나가셨고 희생을 감당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류를 용서하시며 깨끗케 하시고 그 죽음을 구원의 길로 삼으셨습니다.


3. 무슬림과의 대화


“자기희생”이란 주제로 토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과 역사 속에서 다미엔(Damien)의 생애와 같은 실례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문둥병자들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문둥병자들은 격리되어 굶주림과 더러움, 투병이 쉬지 않았고, 소망 없는 섬으로 보내졌습니다. 기독교 목회자인 다미엔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 스스로 저들과 같은 문둥병에 걸려서 결국 죽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그들을 위한 생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하였는지 말해 주세요.


첫째, 사람들이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는 평화와 치료, 용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경건하다는 종교인들은 율법 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 때문에 예수님께 대하여 분노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들과 함께 정죄하였습니다.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이 도전 받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그들의 주인을 배신하거나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세계도 예수님 당시와 같이 죄로 부패하였고 예수를 죽이려고 모함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메시야는 스스로 예루살렘의 적대자들 한 가운데로 나가셨고 조롱과 수치를 받으셨으며 심한 매질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 성정을 지닌 분으로, 할 수 있다면 고난의 “잔”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고 이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체포하여 죽이려고 오는 것을 아셨으며, 그의 제자들이 옹호하고 칼을 빼들어 방어하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초자연적으로 구출해 주실 것을 간구하지도 않았습니다.(마26:51-54). 예수님은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믿었습니다.(요10:17,18)


메시야 예수님은 왜 이를 믿으셨습니까? 수백 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실 고난당하시는 “주님의 종”에 대한 환상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자기의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53:5,12)


예수님 자신도 고난을, 이러한 예언을 성취하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는 고난 받고 죽임 당할 것을 이미 예고하였으며(막8:31, 14:24),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죽음의 희생을 결단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어떤 무슬림들은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없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도, 하지 않을 수 도 있으시나 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구원의 길임을 예수님 자신, 성경이 증언하고 있음을 분명히 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 죽으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 되도록 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분임을 감사함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갈2:20) 

  

4. 실제적으로 중요한 점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속 희생제물의 종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이방인들도) 이러한 죄를 씻기 위해 짐승을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 복종하여 온전한 삶으로 드려진 예수님이 생명의 피 흘리심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희생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히10:11-25)


2), 죄 사함의 확신입니다.- “구원의 길”은 우리 스스로 구원 받을 가치가 있는 의로운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가치한 죄인을 하나님께서 값없이 사함으로 용납해 주심에 있는 것입니다.(눅18:9-14, 롬5:1-11) 당신의 죄가 용서 받았음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3), 죄의 무서움과 하나님의 의로움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두려움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예수님께 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는 심판과 벌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메시야에게 고난과 심판을 옮기셨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셨으며, 우리에게서 그의 의로움을 보는 것입니다.(롬3:21-26)


4), 최상의 승리입니다.- 그리스도는 악한 권세에 대항하여 승리하신 것입니다.


둘째, 꾸란은 “그들은 예수를 살해치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다”고 말합니다.(수라4:156-157). 이에 직접 반박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경을 반박하면 당신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의 죽음을 증명키 위해 꾸란 구절을 재해석하여 반박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슬림 자신들도 이 구절의 뜻을 확신하지 않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다른 여러 해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무슬림 학자들은 수라4:157을 “그들이 그의 정신이나 영을 죽인 것이 아니다”고 해석하여 “예수의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살해되었지만 영은 떠났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세째, 그러나 당신의 중점은 성경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실제로 죽으셨는지를 증거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죽음을 예고했습니다. 막10:45 등, 로마인들, 유대인들, 제자들이 증인도 있습니다, 눅23:47-49, 막15:43-45, 또한 무덤이 봉인되었으며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27:65-66).


어떤 무슬림들은 겟세마네 사건에서 “이 잔을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란 말을 인용하여 강조하고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를 누락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나 꾸란에서는 예수와 제자들이 올바르고 신실한 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한 무슬림이라면 그들을 거짓말쟁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넷째, 철저한 이슬람에는 대속적인 피의 희생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대 바이람 축제(Greater Bairam Festival) 때 동물을 죽이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복종하며 인간에게 관대함을 보이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중동,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많은 무슬림들은 민속 정령신앙(Animist)에 강하게 영향 받고 있으며 죄를 구속하기 위한 “희생”을 실제로 드리고 있으며 악에서 보호해줄 부적과 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나는 무슬림이 “엄격한(Strict)”무슬림인지, “민속(Popular)” 무슬림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다섯째, “그의 피를 믿음”과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게 한다”는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해하지만, 무슬림들은 문자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제8장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1. 무슬림을 이해합시다.


첫째, 많은 무슬림들은 메시야가 십자가를 지심은 수치스럽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키 위해 대신 누구를 사용하셨다는 등의 이야기를 쉽게 믿습니다.


둘째, 꾸란은 사람이 모든 악한 세력을 대항하여 보호받을 곳은 하나님뿐이라고 가르칩니다. 부적을 만드는 것에 대해 가르치지 않습니다. 꾸란은 실제로 점치고 예언하는 것도 금합니다. 그러나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많은 무슬림들은 알라 신보다도 더 어떤 실제적인 신적 능력이 있는 피난처로 보이는 미신과 부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어떤 무슬림들은 무하마드나 성인들이 마지막 날에 중재해 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세계 지도급 무슬림 학자들이 편집한 “이슬람-첩경의 길”(Islam-the Straight Path)에 보면 “심판 날에 어떤 도움이 될 이는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p106, cf pp339-341). 그러나 많은 사하라 남부 및 아프리카, 아시아 무슬림들은 중재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행한 공로나 그들의 죄를 용납해 주는 하나님의 자비도 마지막 날에 그들의 구원을 이룬다고 믿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증언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 사역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악의 세력을 극복하고 승리에 대해 그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중재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3. 무슬림과의 대화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셨고 그 사탄은 우리도 시험합니다. 무슬림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할 때 사탄이 시험하였음을 들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그를 높은 산으로 데려가 한 순간에 세상 천하만국을 보여 주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에 이르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셨느니라” 고 답하여 사탄을 물리쳤습니다.(눅4:5-7, 13)


당시 사람들은 모든 질병, 특히 정신질환을 악령의 역사라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느 날 악령 들린 사람이 예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는 말씀으로 악령을 꾸짖어 그에게서 나오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 도다”고 했습니다.(눅4:31-37).


마침내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증오하고 조롱하였으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분노도 죄도 없이 참으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그의 원수를 저주했습니까? 그는 오히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생명을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탄의 권세를 이긴 영광스런 승리입니다(히2;14,15, 12:2).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승리를 실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도록”하셨습니다.(행2:36, 롬14:9, 빌2:8-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사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인간의 고난과 시련, 죽음까지도 모두 담당하십니다. 우리가 사탄의 모든 악한 일들과 시험, 죽음을 맞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면 그의 승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우리를 지금부터 마지막 날 까지 중재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아무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참조 히2:17,18, 4:15,16).


4. 실제적으로 중요한 점


첫째, 무슬림들의 부적이나 신상 사용을 직접 공박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무슬림들은 이러한 공박을 들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적 속에 꾸란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해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증거 해야 합니다.

둘째, 어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의 상징을 미신으로 오해할까봐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상징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사용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세례와 성만찬 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신앙을 복 돋아 주는 것임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고전11:26). 또한 우리 자신의 신앙과 증거를 위해 사용하는 상징도 있습니다. 벽에 거는 십자가, 성경말씀, 가족 예배와 공동예배를 위해 사용하는 상징물 등입니다.


물, 빵과 포도주, 성경말씀, 십자가 등은 사람을 돕거나 해치는 마력이 없으며 부적이 아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이 우리를 돕고 있다는 표임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셋째, 무슬림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중요점이 있습니다. 예수는 진실한 인간으로 살았고 자연적 인간으로 죽음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히2:14,15). 네째는 꾸란에서도 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사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제9장 예수, 하나님의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14)


1. 무슬림을 이해합시다.


첫째,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다.- 이슬람에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경배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무슬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 그들은 당신이 예수를 제2의 신으로 삼는다고 의심하는 것에 놀랄 것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예수는 인간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시다"와 같은 말을 사용하면 "땅이 하늘이 되었다"는 말처럼 불가능하며 의미 없는 말이라 여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슬람은 하나님이 천사나 예언자를 통해 인간에게 말씀하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말하며 그대로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무슬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아랍어:Kalam)은 특별히 꾸란으로 세상에 주어졌습니다.

이는 기독교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요한복음1:1의 사상과 비슷합니다. 이슬람은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책이 되었느니라”고 믿습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Kalimatu-Ilah').-민속 무슬림(Popular Muslim)들은 ”예수“를 ”마리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있습니다.(꾸란 4:171, 169)


무슬림의 이러한 “말씀”은 피조물로 성경 요한복음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슬림들도 예수에 대한 명칭으로 유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증언


예수의 특수성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는 인간으로 사시고 죽으셨으나 인간들과 다른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누구십니까?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 해야 합니다.


3. 무슬림들과의 대화


꾸란은 예수가 우리들처럼 여자에게서 태어났고 “모친이 함께 음식을 먹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도 역시 예수님은 실제로 인간으로 사셨음을 가르칩니다. 그는 우리의 어린 시절과 같이 성장하였고 먹고 마시며 기쁨과 슬픔, 고통과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그는 위대한 신앙 스승이며 지도자 이십니다. 무슬림도 그를 하나님의 메신저요 예언자(Rasul and Nabi)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보다 더한 분이십니다. 예언자들과 다른 일들이 그의 생애 속에 일어났습니다. 이점에서 예수님은 인간일 뿐 아니라 평범한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믿도록 인도하십니다. 그의 초자연적인 탄생은 “전 인류에 대한 징표”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언자로서 자신 보다 더 크신 분으로 예수님을 지목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 우편에 계신 분”이라 증거 했습니다. 그의 오심은 새로운 세대의 도래라 했습니다.


새로운 세대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눈 먼 자가 다시 보며,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고, 죽은 자가 생명으로 다시 살며, 죄인들이 회개하고 사함 받으며, 가난한 자들과 눌린 자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의 복음 전해지고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심을 보여 주셨습다. 그러므로 인간의 우선적인 의무는 종교 율법에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활 후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주가 되십니다. 그는 그의 무릎 아래서 모든 악을 처벌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십니다.(마28:18-20, 25:31-46, 고전15:24-28).


성경은 분명한 증거로 예수님이 인간들과 다른 차원의 분이시란 점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그 외에 경배할 다른 신이 없음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어떻게 증거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도 무슬림들도 요한복음 첫 말씀, 즉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존재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오신 영원한 말씀이 인간 존재로 태어나고 살며 겸손하여 인간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셨고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셨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무슬림들도 역시 그를 ”하나님의 말씀“(Kalimatu-Ilah)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까지도 예수님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으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요12:44,45).


4. 실제적으로 중요한 점


첫째, 우리 인간의 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내 말이 내 입 밖으로 나가기 전에 어디에 있었습니까? 우리는 내 머리나 마음에 있었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사를 불러 내 심장과 머리를 짜른다 해도 나의 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나와 나의 말은 같고 분리시킬 수 없는 신비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말 속에 있으며 내 말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말로 행하는 무엇이나 그 말을 행하고 있는 나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행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행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1-12을 보면 인자(예수)에게 어떻게 죄 사할 권세가 있습니까?(5,7,10절) 어떻게 인자가 마지막 날에 심판자가 되십니까?(마25:31-35). 이는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행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행위입니다.


둘째, 무슬림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렇게 존경함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영으로서 예수를 보지 않습니다. 무슬림들의 영 사상은 기독교 개념과 같지 않습니다.


셋째, 이 책에서 기독교 교리 논쟁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먼저 소개하고 함께 기도하며 예수께서 우리의 친구 되심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는 누구이신가?”란 질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신앙고백서(신조) 언어 보다는 성경말씀으로 답해야 합니다. (1) 신앙고백서(신조)는 기독교의 구조를 기술한 것이며 이단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슬림들에게 복음 증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2) 대부분의 무슬림들도 성경(특히 복음서)에 권위가 있다고 여기며, 그들도 성경을 근거로 말한다면 존경합니다.


“삼위일체의 제2격”, “아버지와 동일한 속성의 존재”,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과 같은 언어는 무슬림들에게 우리의 신앙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넷째,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그리스도로 증거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아들 됨을 숨기거나 타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친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증언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제10장 하나님의 아들-삼위일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1:1-3)


1. 무슬림을 이해합시다.


첫째,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인간들처럼 육체적으로 하나님이 자녀를 가진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신성모독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으로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와서 아내를 가질 필요 없으시며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간단히 “있으라”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많은 무슬림들은 매일 기도시간 마다 쿠란 112장을 암송하여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낳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아니했나니 그분과 대등한자 세상에 없도다.“(Qul huwa ahad, allahu-ssamad. Lam yalid wa lam yulad, wa lam yakun lahu kufu'an ahad)


무슬림들은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예수)을 육체적으로 낳은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해도 이러한 호칭마저도 하나님께 대해 불경한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어느 무슬림에게 "예수가 하나님이시다"고 말한다면 그는 당신을 분명히 오해할 것입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도 태어났다는 말인가?, 예수가 삼일 동안 죽음에 있을 때 하나님도 죽었단 말인가?, 하나님이 죽어 있는 동안에 세상에서 기뻐 할 이가 누구인가?"고 물을 것입니다.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곤란하지 않습니까!


세째, 무슬림들은 "삼위일체"를 비판할 때 알라(Allah)는 오직 유일한 분인데 항상 세 신을 뜻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거나 하나님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꾸란에는 “하나님이 셋 중의 하나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니라 하나님 한 분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한 것을 단념치 않는다면 그들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벌이 가해지리라” 했습니다.(꾸란 5:76).


2. 그리스도인의 증언


우선 무슬림 친구의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세 신의 개념이나 하나님께서 육체적인 아들을 갖는다는 사상에는 무슬림들처럼 반대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좋은 비유를 실례로 말해 주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를 소개하도록 하십시오.


3.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무슬림과의 대화


첫째, 일상생활에서 육체적인 아들 됨이 아닌 영적인 뜻으로, 비유와 은유로 흔히 “무엇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리의 아들”, “조국의 아들” 등등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은 단지 영적인 인식에서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과 일상생활에서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말씀을 보여 주십시오. 격언, 설화들, 경험에서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아들은 아버지의 ”형상”이다. 우리가 아들을 볼 때 아버지를 본 것이다.(히1:3, 요14:9).

(2)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아버지께 순종한다.(마11:27, 요8:28, 29).

(3) 아들은 아버지의 최상의 대리자로 아버지의 거하는 곳에 있으며 아버지에게 하듯 공경 하라 했다.(막12:1-9)


셋째,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말씀하신 것을 보십시오(막1:11). 예수님의 기도에서 그분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였는지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때 이를 알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마16:16,17) 

 

넷째, 많은 무슬림들이 이러한 설명에 대해 그들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논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친구가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이나 메시야로 알고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4. 삼위일체에 대한 무슬림과 대화


첫째, 기독교인들도 한 분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 외에 예배할 어떤 신도 없음을 알려 주십시오.(출20:2-3, 막12:29)


둘째, 성경은 이러한 한 분 하나님께서 3가지 방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또는 당신의 무슬림 친구가 “아버지”와 “아들”이란 호칭을 듣기 거북해 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주(Creator)와 말씀(Word) 그리고 성령(Spirit)으로 나타내셨음을 말해 주어도 좋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른 존재로 변천하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항상 세가지 방면으로 존재하심을 말해야 합니다. 

 

셋째,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보다 높고 신비로우신 분으로 기독교인들도 세가지 방면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실례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가지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예로 들지 말아야 합니다.(달걀이 껍질과 흰자와 노른자로 되어 있다). 이는 오해를 일으키게 되며 무슬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더 좋은 예는 세 가지 방면으로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비유입니다. 어떤이는 기계공이요 남편이며 교인인데 그를 집에서도 만날 수 있고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만날 수 있으나 그는 오직 한 사람으로 세 가지 방면으로 존재하고 있음 같은 실례를 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지닌 신비한 존재이며, 태양도 하늘의 둥근 해와 빛과 열로 존재한다는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례는 삼위일체를 증명하는데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데 불과 함을 강조해야 합니다. 

 

넷째,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에 대해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임을 단순하게 증거 해야 합니다. 이 교리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고백함에 있음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섬시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바로 이러한 잘못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이는 한 분 하나님께서 말씀(Word)으로 자신을 나타내셨고 또한 사람들 중에 거하신 말씀인 메시야 예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과 분리 될 수 없으며 예수의 활동은 하나님 자신의 활동이신 것입니다.


다섯째,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를 믿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점점 더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5. 실제적으로 중요한 점


첫째, 이러한 주제로 무슬림들을 괴롭혀서는 안 되며 그들은 쉽게 만족하지도 못합니다. 시종 그들을 정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성경본문(특히 복음서에서)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그러나 본문을 제시하는데 머물지 말고 그 의미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교리적 논쟁”(doctrine debate)을 만들지 마십시오. 경청하고 설명하고 기도하며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둘째, 무슬림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지적하면서 환영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호11:1)과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갈4:4-7) 이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며 그분의 대표자란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전하신 분이심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셋째, “당신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이렇게 무슬림이 묻는다면 “예수님은 인간 존재로 사시고 죽으신 세상에 오신 영원한 말씀이 십니다”고 답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는 골로새서 1:19-20, 2:9 말씀으로 답해도 좋습니다.


성경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시고(요17:3, 롬3:25, 5:8, 고후5:19) 예수님의 활동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강조하였습니다.(요12:27,28 빌2:11, 고전15:28). 이러한 본문을 숙지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음을 강조하여 증거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제11장 성령-교회


보혜사 성령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4:26, 15:26, 16:8)


1. 무슬림을 이해합시다.


첫째, 무슬림들은 기독교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영”(Spirit of God), "성령“(Holy Spirit)이란 개념을 사용하나 이는 가브리엘, 천사나 예수처럼 피조물로 여기며, 무슬림들은 기독교 신앙인 하나님으로서의 ”성령”을 모릅니다.


둘째, 무슬림들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16장에 말씀한 “보혜사”(the Comfort, Counsellor)란 무하마드(Muhammad)를 가리키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꾸란과 정통 무슬림들은 결코 무하마드가 성령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 무슬림들은 무하마드를 성령이라 믿고 있습니다.


셋째, 무슬림들은 “이슬람”(Islam)이란 말이 예배의식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표현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예언자 이사(annabi Isa,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유사한 규례를 가지고 있으나, 복종하는 의식이 없음을 혼란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증언


우리는 어떻게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아 이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셨는지를 증언해야 합니다. 또한 어떻게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며 성령과 직결되어 인도 받고 있는지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3. 무슬림들과 대화


어떤 무슬림들은 무하마드가 보혜사(Comforter) 성령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의 구절들을 무슬림들이 오해하고 있는데 대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보혜사는 영(Spirit)이시지 인간이 아니며 세상에서 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하마드가 태어나기 500년 전 베드로와 도마, 빌립 등 제자들에 임하였습니다.(요14:16,17)


우리는 성령의 “권능”(Power)에 대한 주제로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능력과 힘을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악한 목적을 위해 능력과 힘을 가지려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퍼져있는 악과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 등 악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능을 요구합니다.


제자들에게는 지식도 없고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인 힘과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족속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심령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이 임재 하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나 이젠 하나님의 권능이 저들의 삶 속에 충만함을 체험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기도할 때 치유의 기적으로 응답하셨고 놀라운 사랑과 기쁨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죄를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이러한 성령의 권능을 받게 됨을 두려움 없이 담대히 증거 하였습니다. 믿는 무리가 급속히 증가하였고 여기에서 기독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의 무슬림 친구들에게 사도행전 특히 2장에서 5장을 읽어 주십시오.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으로 교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몸의 지체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듯이 믿는 신도들은 서로 다른 성령의 “은사”(gifts)를 받았습니다. 모든 신도들은 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위해 크던지 작던지 동일한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가져야할 은사가 있는데 이는 사랑의 은사입니다.(고전12장과 13장).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위대한 사랑의 본을 보여 주신 것처럼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랑으로 교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사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할 수 있어야합니다. (요일 4:10, 11, 엡 4;32)


성령의 “열매”는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 보여 져야만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절제입니다”(갈5:22,23). 동시에 성령은 우리의 인간 본성, 우리의 부정한 정욕과 부정한 행위들의 악한 면과 갈등을 일으키며 대립하기도 합니다. 즉 음행과 더러운 것, 호색과 우상숭배, 술수와 원수 맺는 것, 분쟁과 시기, 분냄과 당 짓는 것, 분리함과 이단,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 같은 것들입니다.(갈5:19-21).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도 죄의 본성을 따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며 인도해 주심으로 죄악을 이기고 기도하며 살도록 역사하십니다.(롬8:2, 11, 2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리라”(롬8:11).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8:26)라 하였습니다.


4. 실제적으로 중요한 점


첫째, 무슬림들은 우리가 이러한 교훈을 충실히 지키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결점을 겸손히 인정하며 증거 해야 하며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을 이룰 수 있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둘째, 갈라디아서 5:22을 무슬림에게 실생활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양선 등”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무슬림들 중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것으로 혼란이 온다고 봅니다.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법을 따르기 때문에 혼란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방언으로 말 하는 것은 예배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라 지적합니다. 이에 대해 예배가 방언을 지도하는 것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고전 14;27, 28, 40).


III. 어떻게 무슬림을 도울까?


제12장 성경공부와 기도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1. 이슬람의 경전


무슬림의 경전 개념은 기독교와 다릅니다. 무슬림은 꾸란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특별한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무슬림들은 꾸란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라 믿습니다.


둘째, 그들은 꾸란이 무하마드의 마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라 믿고 있습니다.


셋째, 이슬람은 어떻게 예배하고 생활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는 법전을(꾸란과 하디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그들 자신이 스스로 꾸란을 공부하는 것을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법전의 가르침이 필요할 뿐입니다.


넷째, 그러므로 무슬림은 기독교인들이 성경공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꾸란을 암송합니다. 그들의 꾸란 암송은 주로 계시를 내려 주신 알라 신을 찬양하고 존경과 복종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2. 기독교의 성경


첫째,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특별 계시입니다. 예수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the Mediator)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둘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 뿐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와 교회의 전도와 생활을 통해 말씀하셨는지,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계시가 예언자들을 통하지 않고 “하늘에서 직접 내려왔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요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우리를 인도해 준다고 믿습니다.


셋째,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성경 암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언어로 공부하고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신 것처럼 오늘날도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킨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를 도와야 합니다


시간 내어서 함께 성경을 읽으며 설명해 주십시오. 성경공부 소개서를 전해 주시고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토록 회원으로 만드십시오.


기도


1. 이슬람의 기도의식

첫째, 무슬림들은 쿠란 암송과 마찬가지로 알라 신께 복종하고 찬양 드리기 위해서 기도도 아랍어로 암송해야만 합니다. 말씀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틀림없이 정확하게 암송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 말들은 주로 신께 찬양 드리는 것이며 또한 신께 의탁하고 무하마드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요청하고 숭배자들에게 문안하는 내용입니다.


세째, 여성들은 기도의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며 모스크에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2. 기독교의 기도와 예배


첫째, 기독교인은 “의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교제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자신의 기도를 드리며 일상생활에서 순종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언어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아버지께 구하듯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열고 창조주 앞에 죄인으로서 겸손히 간구 합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기도방식에 독특한 것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에 내포된 내용:


우리의 감사기도(Our gratitude;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참회기도(Our penitence; 하나님 나를 용서하소서).

우리의 탄원과 중재기도(Our petition and intercession; 하나님 구하옵니다)


셋째, 여성들도 모든 기독교의 예배와 친교에 함께 참여합니다.


3. 탐구자를 도와야 합니다


무슬림들이 복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첫번째로 부딪친 문제는 기독교인의 즉흥적 기도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사무실에서, 식당에서, 환자를 방문하여 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개인적으로 함께 모여서 비공식적인 기도에 참여할 기회가 많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에서 “암송”하는 것을 가르켜 주십시오. 주기도문, 시도신경, 시편 또는 죄의 고백 등입니다. 모든 회중이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통해 일치와 기쁨을 경험하는 것을 알려 주십시오. 성만찬은 예수의 분부를 순종하는 것이므로 많은 무슬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고전11:23-26). 모든 예배에서 우리는 용서와 승리를 주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생명의 길이 예배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제13장 교회와 연결


“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7-47)


1. 이슬람 공동체


첫째,“무슬림이 된다”는 의미.- “무슬림(Muslim)”이란 뜻은 “신께 복종하는 자”란 뜻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슬림은 “무슬림이 되는 것”이 특정한 신앙과 교리를 지킨다는 의미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뜻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에서 이슬람법이 예배와 신앙과 관습과 경제 및 정치까지도 주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슬람 규례와 정결예식 방식을 따라야 하고 어떤 이는 아랍식 이름을 가지며 금식과 이슬람 축제에 참여하며 때로는 동일한 의복을 착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공동체의 일체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둘째, 배교의 공포.- 만약 어떤 무슬림이 이슬람을 떠나 타종교로 간다면 공동체는 전율하게 됩니다. 그들은 사적으로 믿음을 결단하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며 그러하면 공동체를 파괴하는 “반역자”가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정통 무슬림 법인 샤리아에서는 “배교자”(이슬람에서 떠난 개종자)는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슬람국, 무슬림 지역에서 배교자는 항상 핍박을 받고 결국에는 추방되어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셋째, 관용의 성장.- 이슬람에도 관용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교자를 사형 시키는 법은 꾸란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꾸란은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제2장 256, 257)라 했습니다. “경전의 사람”(Ahlu-I-kitab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존경하라 하였지 우상숭배자(Kafirun)로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최근 대부분 무슬림 국가들도 개인적으로 종교, 신앙, 개종 자유를 선언한 국제연합(UN) 헌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많은 무슬림 국가들에서 이러한 자유가 충분히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무슬림들도 종교선택은 개인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문제란 인식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2. 구도자를 도와야 합니다


첫째, 사랑의 다리를 세우십시오. 무슬림과 기독교 두 공동체간의 의복 착용, 관습, 거주지 등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째, 성실하십시오. 회심자를 획득하려하지 말고 그를 성실히 대하십시오. 자유롭고 성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는 소망을 가지고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셋째, 구도자를 사랑하십시오. 교회에 요청되는 것은 저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슬림을 이해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도와야 합니다.


넷째, 구도자를 가르쳐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무슬림들로부터 질문과 비난에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독교 신앙과 생활을 이해하도록 도우십시오. 기독교 신앙으로 모이며 교제가 있는 곳을 안내하십시오. 박해에 직면하여서도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십시오.(마 5:11,12, 막 8:31-38, 벧전 2:9, 19-25).


세례와 신앙 고백에 대하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고 “은밀한 신자”(secret believer)로 있는 것은 기독교 신앙생활의 그 풍성한 은혜를 놓치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첫째, 실제적인 어려움(difficulties)


그럼에도 우리는 실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동정심을 가져야 합니다.

1) 일반적으로 그의 부모 동의 없이 미성년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잘못일 수 있나 청년은 자립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성년이기 때문에 세례를 베풀 수 있습니다.


2) 무슬림 성인 남성의 경우, 신앙고백과 세례의 중요성을 성경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를 인도해 주시도록 지속적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무슬림 동료들로부터 비난과 핍박에 노출되기 전에 그의 믿음과 성경지식이 기반 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그의 세례를 1년 혹은 2년 연기하고 그가 무슬림 사회에 들어가 증언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의 가족과 동료들을 구원하고 단체로 세례 받게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무슬림들에게 최소한 그의 회심을 묵인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면 세례를 연기해야 합니다. 연약한 신앙이 성장하도록 기도하며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도록 격려하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공개적으로 신앙고백하고 세례 받기 전 후에도 사랑으로 그를 감싸주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가 세례 받을 때 특별히 책임지고 지도하며 격려와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 후견자를 세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교회 규칙들


1)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례 줄 수 없다는 규칙은 이슬람에서 개종한 이들에게는 부적절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무슬림에게는 기독교 신앙생활 초기에 즉시 세례를 주어야만 합니다.


2) 더욱 곤란한 문제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한 아내를 가져야 하는데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 받을 때 한 아내만 남겨두고 모두 내 보내야 합니까? 아내들을 그대로 거느리고 있는 그에게 세례와 성찬을 주지 말아야 합니까?


기독교의 혼인제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나 특히 무슬림 새로운 신자에게 은혜의 수단을 베푸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교회 규칙을 존중하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으로 상황변화에 따라 기도하며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여, 당신의 은혜와 축복을 무슬림들에게도 내려 주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위대함을 항상 전파하게 하옵시며,

당신의 사랑을 무슬림에 전하지 못한 우리 죄를 용서하옵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그 큰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의 교만과 냉정함을 물리쳐 주시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며,

저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우리가 무슬림들에게 어떤 고난을 받는다 해도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제2부 복음을 받은 무슬림들의 증거


I.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무슬림들


1. "예수님, 사랑의 멧세지가 좋아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지대인 스리나가(Srinagar)시는 75만명 인구의 카스미르 분쟁 최 인접 국경 지역이다. 1989년 이래 3만5천명이 넘는 주민이 파키스탄과의 전쟁으로 희생되었고, 지금도 힌두교와 이슬람 간의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스미르대 학생이며, 아버지가 이슬람 사제(이맘)인 도비(Riaz Ahmed Dhobi)는 주일 아침 교회로 가면서 "나는 기독교에 관심이 있다. 폭력을 증오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증오한다. 나는 평화를 찾기 위해 교회에 왔다"고 외쳤고, 도비의 친구인 가니(Mohd Yousuf Ghani)도 "종교를 선택할 자유도 없으나 예수님의 사랑의 멧세지가 좋다"고 고백했다. 도비는 가정의 만류와 핍박에도 "나는 오늘 부터 우리 마을에서 첫 기독교인 이다"고 말하며, "어떤 위협 앞에도 결단코 숨기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최근 정치적 갈등과 긴장, 전쟁 속에서 힌두교도, 이슬람도 외면하고 폭력을 해결하는 새로운 길로, 사랑과 용서, 평화의 종교인 기독교를 선망하며 수 천명이 대거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다. 북 인도 All Saint Church의 77세인 요나단 팔죠르(Yonathan Paljor)씨는 " 수 천명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찾는 것을 당신은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오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비록 교회가 방화 되고 폭탄이 던져져 파괴되기도 하나 폭력과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은 사랑과 용서의 복음에서 평화를 찾고 있는 것이다. (Christianity Today, 2002. 9. 9.)


2. 이라크, "내게로 오라, 너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노라"


압델라만(Abdel Rahman)은 이라크에서 성장하였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사제(이맘)가 되리라 결심하였다. 그는 이슬람에 열심한 학생으로 젊은 기독교인들과 종교에 대해 논쟁하면서, 자신들의 신앙 문제를 알게 되었고, 그의 질문에 응할 수 있는 교회목사를 소개 받았다. 목사와 만나는 중 자신이 기독교에 대한 견해가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이슬람에 대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압델라만은 이슬람도 기독교도 다 중단하고 생을 즐기는 쾌락 속에 빠져 버렸다.


어느날 밤, 잠결에 수염이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아들아, 왜 나의 양을 핍박하느냐?", 압델라만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니라", "나는 당신의 양을 괴롭힌 일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잃어버린 양으로 길을 찾고 있습니다.", "너는 바로 나의 잃은 양이다. 내가 곧 길이니라".


압델라만의 아버지는 아라크 군대의 고위층 지휘관으로 당시 사고로 별세 하였는데, 아랍지역 태생으로 언론인인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이 음모로 인한 비참한 사건이라 했다. 압델라만은 잠결에 "지금 곧 너의 나라를 떠나라"고 명령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예수님의 음성임을 알고, 즉시 어린 양처럼 두려움 속에 어머니의 나라로 떠났다.(보안상 밝히지 않음).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찾았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암살 되었고 경찰이 너를 찾고 있다고 들었다.


압델라만은 하나님께 진리의 길을 보여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였고 꿈속에서 예수님이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내게로 오라, 너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노라" 말씀하였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공격, 침략한 몇 달 후, 압델라만은 모국에서 추방되어 복음전도자, "사도"가 되었으며, 네델란드에서 무슬림 난민들에게 복음 전하는 활동하였고, 지금은 미국에 살면서 정보 기술자로 무슬림들에게 복음 전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3. 방글라데시, "네 발을 잘라 버릴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간 네 다리를 잘라 버릴 것이다" 화난 군중이 고함쳤다. 화난 군중들로 부터 밀론(Milon)이 이런 위협을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나 하나님 말씀 전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기독교 문서를 배포합니다. 비가 오면 한 손으론 우산을 쓰고 다른 손으론 운전대를 잡고 갑니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며 진흙탕 길에 미끄러져 긁히기도 합니다."


밀론은 십대 때 친구로 부터 복음 책자를 받았다. "나는 침대 밑 상자 속에 감추고 밤에 몰래 호롱불을 켜고 읽었습니다. 12년 동안 근본주의 무슬림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쿠란에 기록된 예수에 대해 알고 있으나 그분이 구세주인 줄 몰랐습니다. 1992년에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집에서 400km 떨어진 곳 까지 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밀론은 그 후 무슬림들로 부터 박해를 수 없이 받았다. "나는 시장에서 의류를 팔며 기독교 서적도 갖다 놓았습니다. 무슬림들이 내 가게로 몰려와 물건들을 그냥 가져 갑니다. 내가 돈을 요구하면 그들은 나를 치려고 위협했습니다. 때로는 복음문서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에게는 거져 주기도 했습니다."


밀론은 "우리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평화를 얻고 이 세상 떠날 때 천국에 이르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고 말한다.(Jesus Freaks, p94-95)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갗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고전3:4-6) 

 

  4. 파키스탄- 복음 증거를 위한 순교와 고난


안닐라(Anila)는 학교에서 퍼빈(Perveen)을 만나 서로 친구가 되었다. 아닐라는 친구에게 성경을 주었고 기독교 복음 전하며 찬송을 가르쳐 주었다. 퍼빈은 빠르게 찬송을 익혔고 부모가 부재 중에 동생들에게 가르치기 까지 하였다. 엄격한 무슬림인 퍼빈의 부모가 이를 알아차리고 동생을 먼저 기독교 영향에서 격리시켰다.


안닐라는 퍼빈을 고난주간 성 금요일 예배에 초대하였으며, 퍼빈은 예수를 즉시 영접하고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짐을 감사하며 그녀의 생활도 크게 변하였다. 그녀는 가족들로 부터 반대에 직면해서도 담대히 성경을 공부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퍼빈의 부모는 안닐라와 목사를 유괴죄로 고소하였고, 안닐라는 체포되어 9번이나 기절하도록 매질을 당하고 결국 투옥 되었다.


목사님도 다음날 투옥 되었다. 안닐라와 목사는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과 채찍질 당하였다. 그들이 풀려났을 때 아니라는 두 달 동안 앉지도 못했으며 목사님은 엉덩이와 넙적 다리의 상처로 인해 걷지도 못하였다.


퍼빈은 목사님과 친구가 그의 부모에 의해 고소된 것을 후에 알았으며, 기독교로 개종하면 심한 매질을 당할 뿐 아니라 가족들에 의해 살해됨도 알았다. 퍼빈은 가족의 명예를 회복키 위해 형제들에 의해 죽도록 맞았고 지역 관리에게 넘겨져 그 최후를 알 수 없다.

 

그 후 안닐라는 유괴죄로 다시 체포 되었으나 1999년 5월 석방 되었다. 이는 세계의 신실한 기독교 형제들이 그를 위해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음을 알고 하나님께 찬양하였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1-22)


5. 이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에 의해 택함 받은 이


" 사람들은 종교를 선택한다지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 받은 이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자기의 생명까지도 포기하라 하셨으며 세상을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세상이 나를 심판할 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나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45년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으며, 그의 선하심은 내게 그늘이 되고 그의 사랑이 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 감옥에서 다니엘과 친구들을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9년 동안 감옥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문 속에서도 나는 사랑과 감사로 충만 합니다."


"모든 예언자 중에서 예수님 만 부활하셨고, 그분은 우리의 영생의 중보자이십니다. 나는 내 생명을 그분의 손에 맡깁니다. 내게서 삶은 그를 섬길 기회이며 죽음은 그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메디 디바즈(Mehdi Dibaj)란 이란 목사의 법정 증언이다. 상류층 무슬림인 그와 가족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과 서적을 위험을 무릅쓰고 파시(Farsi)어로 번역하다 1985년 체포되어 사형 언도 받았다. 이란의 정치 사회적인 혼란이 기독교 신앙을 철회하도록 핍박하였다. 디바즈는 2년 동안은 발도 뻗을 수 없는 비좁은 독방에서 복역하였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 아지쩨(Azizeh)도 다른 무슬림과 결혼하라고 압력 받았다. 디바즈가 신앙을 변절치 않고 굳게 지킴으로 법정은 사형 언도 내렸으나 9개월 후 국제적인 진정에 의해 석방 되었다. 그러나 곧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 되었는데 이는 이슬람 지도자들이 사형 집행한 것이다.(1994년도)-(Jesus Freaks, Tulsa,1999))


그러나 그의 네 자녀들은 아버지를 잃었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지금도 믿음을 지키고 있다. 

   

6. 주께서 나를 건지셨습니다.


두 명의 오빠들이 여 동생을 지하실로 끌고 가서 벽에 밀어 부쳤다. 그녀의 입에 총을 들이 대고 "예수를 부인하라 그러면 너는 산다. 이슬람으로 돌아오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고 속삭였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자신이 새로운 신앙 때문에 가족들에게 큰 수치를 주었으므로 종교 관습에 따라 형제들이 죽일 권리가 있음이 머리에 떠올랐다.


몇 달 전, 가족들이 가족 관계를 끊고 집을 나가라고 쫓아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여 선물과 따뜻한 정을 보이며 이슬람을 배교한 것 용서한다고 했다. 어느날 저녁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네가 나와 가족을 사랑한다면 너의 미친 짓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돌아오라. 성경 읽기를 중지하고 예수를 부인해야만 한다. 지금 결단하라"고 말하였다.


지금 그녀는 오빠들 앞에 서있다.

"당신들은 나를 죽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였으며, 나를 위해 천국을 예비 하였습니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오빠들은 분노하여 부들부들 떨더니 총을 들이 대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총을 들이 대며 여섯 발을 쏘았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 그들은 동생을 낚아채어 집 밖으로 던져 버렸다.


"당장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너는 이제 우리에겐 죽은 것이다"


여러 해 후, 그녀는 오빠들과 가족들이 주 예수님을 믿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Ron Brackin, "Sweet Persecution", Bethany House Pub, 1999. pp63-64)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 셨느니라"(딤후3:11)


7. 이집트, 가족에게서도 배척당해


  이집트에서 디모데란 청년이 라디오 방송으로 복음을 듣는 중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는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새로운 신앙의 기쁨을 그의 무슬림 가족들과 나누려 했을 때 그는 가족과 친척들로 부터 집에서 쫓겨났고 다시는 돌아 올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산지 여러 해가 지나서 다시한번 가족들과 만나기로 결심하고 어머니 생일날 꽃다발을 들고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고 문이 열리었다. 

 

"어머니 생일을 축하 합니다", "어머니를 사랑 합니다"고 디모데가 꽃다발을 드렸을 때, 어머니는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고 단호히 문을 꽝 닫았다. 디모데는 목사님께 찾아가 눈물을 한 없이 흘리며 "목사님 나는 이젠 가족이 없습니다. 누가 내 가족입니까?"고 목메어 흐느꼈다. (Paul Estabrooks; "Secrets to Spiritual Success", Tonbridge, U.K 1996. pp27-28)

 

눅4:24, 28-30, 마13:54-57 , 막10:29-30.

*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때문에 박해 받고 감옥에 갇히는 것은 자신의 가족과 이웃들로 인해서 입니다. 때로는 같은 믿음의 형제들로 인해서도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고향 사람들에 의해 배척 받으셨고, 동족과 제자에 의해 배신당하였습니다. 다윗도 가까운 친구들에 의해 배신 당 하였으며(시41:9, 55:12-14), 바울 사도도 믿음의 형제 데마와 알렉산더에게 배신당하였습니다(딤후4:10,14).


II. 동남아 무슬림들의 증거


1. 로가야의 고백- 예수님은 구세주, 모하메드는 전달자


나는 말레이시아 여성으로 어렸을 때부터 오전에는 공립학교, 오후에는 이슬람 종교학교를 다니면서 이슬람을 공부했습니다. 종교학교에서 꾸란의 구절들을 읽고, 암송하고, 이해하는 것을 배웠으며, 결국 이슬람 종교 여 교사(Ustazah) 자격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종교 수업을 통해 기도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유일한 방법으로,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한다고 배웠고 늘 쿠란의 Al-Faithah 장을 암송해야 했습니다. 꾸란의 첫 장 6절에“'우리에게 곧은 길을 보이리라”(Show us the Straight Path)는 구절을 외우고 또 외워도 나는 그 '곧은 길'(Straight Way)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종교 선생은 내가 질문할 때마다 항상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코 묻지 말라는 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나는 꾸란의 구절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마다 항상 선생들에게 질문하곤 했는데, 선생들은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했으며, 그래서 나는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처음에 힌두교인 친구를 따라 힌두 사원에 갔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부자연스러운 우상들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데다가, 이해할 수 없는 타밀어는 힌두교 사원에 가는 것을 그만두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몇의 기독교인 친구들과 주일날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교회에는 어떤 우상(형상)도 없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나는 영어선생 집에서 모아는 기도 모임에 계속 참석했고, 나의 가정에서 결코 경험하지 못 했던 사랑을 느꼈습니다. 어느 주일 오후, 예수님 그림을 집에 가지고 왔을 때, 가족들이 알게 되어. 수없이 맞았고, 집밖으로 내 쫓겼으며,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등 두렵고, 무서운 시간들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몰래 스스로 주일날 교회에 나갔고, 거기서 남편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도 가고, 약도 사용했지만 남편은 날로 더 병약해졌습니다. 남편이 마실 물에 대고 쿠란을 암송하고 마시도록 했지만 모두 다 허사였습니다.


결국 남편 친구의 소개로 우리는 목사님을 만났고, 목사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병든 이들을 고치셨는지, 또한 우리가 그 분을 믿고 낫기를 구한다면, 오늘에도 여전히 그렇게 행하고 계신 분이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성경을 붙들고 열심히 읽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간 기도했을 때, 남편의 건강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복음과 구원을 깨닫게 된 후에, 우리 부부는 하나님이 주신 이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러 교회에 나갔고, 감격적인 예배와 경배의 찬양,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는 것은 즐겁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느 집회가 끝난 후 목사님은 사람들을 불러서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목사님은 특별히 남편을 부르셨고, 남편은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했을 때, 밝은 빛을 보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나 또한 그 다음주일에 목사님의 기도를 받을 때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십자가 모양의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다음 순간 나는 교회 바닥에 누워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나와 우리 가정에는 항상 주님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성경 공부를 계속 하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성경의 말씀은 "우리에게 곧은길을 보이시리라"(수라 1장 6절)고 꾸란 al-Zukhruf 장 61-63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나의 구원을 이룰 수 있음을 확신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나의 구주(my Saviour)시며, 나의 주님(my Lord)이십니다.

일 년 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들의 출생신고를 했을 때 한밤중인 11시경 종교부 경찰들이 우리 집에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왜 내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는지 알고 심문했고, 나는 쿠란에 기록된 구세주는 예수님이며, 모하메드는 그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나는 또 그들에게 나의 개종은 나 한사람의 책임이며, 심판 날에 크신 하나님 앞에서 나 홀로 설 것이며,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설명을 듣고 그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나는 확실하고 담대히 증언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2. 아이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으로 자란 내게 종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학위를 마친 후 나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미국에 갔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한 미국인 친구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1학기 중에 내 생일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친구로부터 작은 신약 성서를 생일선물로 받았습니다. 처음에 무척 당혹스럽고 두려워서 성경책을 만져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지만, 성경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내게 가장 짧은 마가복음부터 읽기를 권해주어, 마가복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내 마음에 와 닿았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준 말씀은 마태복음 23장 25,26절의 말씀이었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나에게 이 말씀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성장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러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님은 종교적인 외식을 정말 싫어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종교인들, 그러나 속은 이기심과 교만으로 가득 찬 그런 사람들을 정말 싫어하셨습니다.


또한 부모님은 내게 진정한 무슬림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면서, 그 분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 그리고 내 삶에서 그 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서부터인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가족들의 분노는 내게 너무 큰 고통이었으나 믿음으로 그것을 견디어냈습니다. 나는 가족들과 아주 친근하게 지냈으며, 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어머니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을 삶으로 증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몇 날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그 분께 말입니다.


3. 야흐야 - 구원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물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으로 태어나고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나로 하여금 이슬람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어려서 부터 이슬람의 5대 기둥(신앙고백, 기도, 금식, 자카트,메카순례)에 복종케 하였고, 아랍어로 꾸란란을 암송케 하였습니다.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종교학교(이슬람)에서 공부하도록 하였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슬람 교육을 받은 무슬림들에게 특별히 직업의 혜택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슬림으로 알라 신께 충성하고 율법에 복종하는 의무를 다하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만족치 못함을 느꼈습니다. 선행하고 있다고도 여기지 못하였고, 알라를 기쁘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고난과 시련 중에서 알라께 부르짖으나 신은 너무 먼 곳에 계시며 인격적으로 교통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1981년 미국 유학 중에 기독교인 여자 친구를 만나 복음에 대하여 처음 들었습니다.(나는 어려서 부터 기독교인들은 우상숭배자들이라 여겼으며, 말레이시아에서는 무슬림들이 복음에 대해 듣는 것도 엄금하였습니다.)


나의 여자 친구는 첫째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죄인이라 했으나, 무슬림으로서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무슬림은 인간이 죄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연약하다고 가르칠 뿐입니다. 둘째로 이사 알-마시(Isa Al-Masih,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그를 나의 주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용서함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은 너무나 믿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사랑, 자비, 동정심, 은혜로 차있는 이사 알-마시(예수)의 가르침에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복음서의 메세지는 분명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사 알-마시(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기 위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무슬림 신앙과 새로운 발견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이 중 하나가 진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1983년에 진실한 한분 하나님을 찾기로 결심하고 "하나님, 나는 중심으로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나에게 당신을 보여 주세요"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3-1985년 동안 나는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1985년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1985년에 이따금 교회에 나갔는데 어느 날 목사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설교하시며, 성경말씀에 우리 모두는 본성적으로 죄인이나, 죄를 고백하고 이사 알-마시(예수)를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갖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었다.


이 때 갑자기 모든 것이 내게 분명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친밀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게 아랍어로 기도하라 요청치 않으시며, 언제든지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구원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은사)입니다.


그날 밤, 내 죄를 회개하고 이사 알-마시(예수)를 나의 주님과 구세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 후 내 영혼의 평안을 느꼈으며, 오늘날 까지 이사 알-마시(예수)를 내 생명으로 결단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여자 친구와 결혼하여 3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하심을 믿습니다. 시편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 이라".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며,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내게 힘주심을 믿습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4. 크리아 - 말레이 무슬림들에게 원하는 것


나는 말레이시안 무슬림으로 태어났고, 이슬람 종교적, 정치적 전통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랍어를 공부하였고, 꾸란 독경과 정결예식, 기도와 금식 등 무슬림 전통을 따라며 성장하였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해외여행 중에 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알라 신께 기도하려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큰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아랍어 기도문과 정결예식은 알고 있으나 특별한 경우 알라 신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나는 알라신이 아주 멀리 계신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거룩한 신은 꾸란과 율법, 정결예식과 아랍어로만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모든 연약함과 무가치함도 용납해 주며, 사랑과 용서의 단순한 종교로써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쿼바디스"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저들의 악행을 기꺼이 용서하였고, 굶주린 사자에게 던져졌어도 그들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약하였으나 강하였고, 죽음에 이르렀으나 영생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다음날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튼 날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가 내 앞에 웃으며 서계셨습니다. 나는 기뻤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심을 알았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내 마음에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 믿었습니다.


나는 말레이시아로 돌아와서 이슬람 문화와 계율 속에 지내었습니다. 라마단 금식기간 동안에 나는 침조차 삼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기도와 정결예식을 지켰고, 악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늘 꾸란을 암송하였습니다. 개는 물론 강아지 인형조차도 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규례와 법을 지켰지만 실수와 잘못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나는 성경을 받는 기회가 생겨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읽는 중 내 마음에 들려오는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온전한 이 없으며, 죄로 인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나는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고백하였고, 용서를 간구하였습니다. 나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희생을 받아들였습니다. 선교사가 계속 방문하여 기도하며 예배 드렸다. 나와 가족도 모두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오늘날 나는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고 하나님도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나는 사랑하는 무슬림 형제들에게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하시고 유일한 하나님은 예수님을 따를 때 당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5. 히쌈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이다


말레이인인 내가 처음으로 크리스챤을 만난 건 90년대 초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크리스챤 친구는 기도를 통해 어머니의 병이 고침 받았던 간증을 내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복음서(Injil)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도 ‘알라’가 있는 것을 보고, 무슬림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성경에도 “알라”라는 단어가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성경(the Al-Kitab)에서는 “알라”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만일 그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라면 가까이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기독교 신자인 한 친구가 또 내게 성경을 건네 줬습니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성경을 주다니? 내 생각에 이 친구는 성경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됐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꾸란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데 화장실에서 성경을 건네는 그의 태도에서 성경이 별 의미 없는 책이라 여겨졌습니다.


그 이후 나는 이슬람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는 수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슬람에 의하면 꾸란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기에 거룩하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역시 거룩합니다. "예수는 진정한 하나님의 영이다.“라고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라가 그 영에 대해서는 무하마드에게 언급하지 않았기에 선지자 무하마드조차도 하나님의 영에 대해 잘 모른다고 꾸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 많은 진리를 알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나는 신비주의(Tasawuf)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정말로 알라와 가까워지길 원했고, 진리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도 기독교의 가르침을 비판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벽에 걸린 이슬람 가르침을 보면서 이것이 진리일까?, 이슬람과 기독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누군가 내 손과 가슴을 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잠들었고 그는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그의 하얀 옷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종교 선생을 찾아가서 지난밤의 경험을 설명했습니다. 하얀 옷을 입고 내 손을 잡았던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일 거라 말했습니다. 그는 사탄의 짓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 해주었습니다.


밤 기도시간(the isyak) 기도 후에 나는 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라.” 기도하다 잠이 들었던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집으로 가 다시 잠이 들 때까지 꾸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밤 예수님은 다시 나를 찾아 오셔서 내 손을 잡으셨고, 나는 그의 옷자락에서 피 흘리신 상처를 보았습니다. 내가 그 분께 왜 가슴에 출혈이 있는지 물었을 때 갑자기 내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장미향을 느꼈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세 번째 밤, 예수님은 다시 내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길이다”. 그 체험 이후, 나는 교회 가서 내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내 체험이 사탄이나 하나님께로 온 것 둘 중의 하나라고 했고, 또 다른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나는 또 다른 교회에 연락했고, 교회 지도자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줬습니다. 그 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이 바로 꾸란 수라에 기록된 하나님의 영인 것을 믿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기도할 때마다 장미향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나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고, 그 분의 능력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이후 내 삶은 달라졌습니다. 근본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에는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담배 중독에서도 자유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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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해(盧宗海) 선교사

감신 및 동 대학원 졸업. Malaya대학(Pusat Bahasa) 수료. 국내에서 15년 동안 목회 사역, 감신대, 목원대, 서울신학원(현, 협성대)에서 역사신학을 강의를 접고, 1985년 4월4일 선교사파송 받았다. 현재까지 말레이시아 선교사로 파송 받아 32년째 선교사역 중이다. “말레이시아 한인교회 13년 담임”하며 선교사역하였고, 2천 년부터 현지인 사역, “말레이 무슬림선교”에 주력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동남아 선교센타(설립:1988)를 운영하면서, “기독교-이슬람 관계 연구소”(CM리서치) 소장으로 헌신하고 있다.


*저서: 中世基督敎 神秘思想 硏究(서울, 한울, 1981)

韓國監理敎會의 性格과 民族(서울, 성광, 1983)

韓國監理敎史의 새 視覺,(서울, 풍만, 1988)

말레이시를 알자-복합사회와 문화이해(서울,나단, 1994)

東南亞 이슬람과 韓國 基督敎 宣敎(서울, 성서연구사, 2002)

말레이, 그들은 누구인가?(서울, 글마당, 2011) 등 外 多數.

*역서: 자유와 빛을 주소서-아펜젤러 일기(1886-1902), (서울, 기독교서회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