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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이야기

선교사 위기상황과 대처는?

[선교사 위기상황과 대처는?]

 

노 종 해(CM리서치)

   

 (*30년 이상 현장에서 사역하시거나 은퇴하신 "시니어선교사 카톡방"(원로선교사)에서, 오늘의 주제: "선교사 위기상황과 대처"(2.6.)에 대해 참여한 카톡 글 입니다.)


*선교지에서 뇌졸중 때 성경통독에 몰두하던 성경책-예수님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나는 어려서부터 위기상황 대처를 무관심으로 자랐습니다평양에서 부모와 함께 1.4후퇴 때 피난하여 왔으니, 위기상황을 격었고,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질병 재난 등 극한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이 섭리로 통치하시며 인도하시고 구원해 주심을 가르침 받고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 고난, 고통, 난관에서도,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앞길 인도해 주심을 믿고 자랐습니다.

 

병 등 고난 재난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제 욕망대로 살려는 죄로 발생한 것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위기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병원도 약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런건 불신앙이라 여겼지요.


   

*뇌졸중 중에 성경통독-엘리아도 죽기를 구하였군요-"내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왕상19:4)

 

목회도 선교사역도 하나님의 뜻에 몰두하면, "이 모든것을 더해 주시리라" 믿고 전념했지요. 그러니 교회와 교단이 책임져 줄 것이라 여기고 목회일과 사명에 전념하여 몰두한 삶이 였습니다. 가정은 아내에게 맡기고... 노후, 위기 등은 고려치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강단에서 설교와 심방기도하며 목회, 사역했는데, 어떻게 이중적으로 산답니까? 병원도 약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지고(2006), 이듬해 심방중에 갑짜기 뇌졸중(중풍)으로(2007)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1. 교회도, 교단도, 선교단체들도 무반응-호소해도 소용없지요. 그 많은 선교편지들에도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2. 목회자도 주변 선교사들도 전화 한통없었지요. 소문만 퍼지고...

 

3. 이것저것 음심조심, 건강을 위해 이래라 저래라 등 조언만 무성하고...


*뇌졸중 중에 성경통독-요나,"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게 나으니이다, 죽기를 구하여"(4:3, 8)

 

그러니 처절하고 철저한 낙망이지요. 의지할 데도 없고, 어디에서도 위로와 환영 받지도 못하는 지경입니다. 불평불만, 낙심으로 가득찼지요. 그러다가 마음 속에서, "자기가 좋아서 '선교사'로 가놓고 누구를 원망해?" 물음이 떠올랐고, 교회에도, 교단에도 책임과 의무도 물을 수 없었습니다. 외롭고 처절한 낭패이지요. 해외 선교지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으로 앞길이 망막했습니다.

 

낙망 중에 나를 부르시고 파송하신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찼습니다. "차라리 죽여주시요" 울부짖음만 가득 찼습니다. 아파트에서 투신할까? 어떻게 죽을까? 생각만하고 슬픔 속에 지냈습니다.

 

그래나 선교지를 떠나지 않았고, 매일아침 성경책을 주머니에 넣고, KL도심 선교센타 사무실에 나갔으며, 시원한 인근 커피숍에서, ''성경통독''에 몰두했지요. 뇌에 이상이 있고 눈도 가물거려 책도 볼 수 없었으나, 눈이 안보일 때까지 성경책만 보리라고 작정했습니다. 운전도 못하고, 걷기도 비틀비틀 불편했으며, 손에는 종이 한장 들기도 불편했습니다. 그러니 주머니에 성경책을 넣고 걸었지요.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던 그 성경책-청색표지 성경 15번 통독하고, 교체해서 계속 통독하던 성경책들

 

성경통독하는 중 마음에서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평온해졌지요. 믿음의 사람들도 처참한 시련과 위기에 처했고, "죽여 주세요" 울부짖었으며, 예수님도 "왜 나를 버리시 나이까?" 울부짖었음을 보았고, "나만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사람 어디있나?", 내 삶을 주님께 맡기게 되니 마음에 평강이 솟았고, 찬송하게 되으며, 어드덧 몸도 조금씩 회복되어 감을 알았습니다.

 

*성경책 뒷장에 통독 횟수를 기록하며-"성경 읽는 즐거움으로 사역하고 있다" 등 메모도 보이는군요


선교지에서 투병 1년 후 병원을 한국으로 옮기니(2008), 건강보험 처리도 되고(장남직장 보험), 검진 수술, 눈수술, 암수술 등 이어졌고, 걷기 불편한 후유증은 평생 있다고 합니다. 이후 뇌졸중, 암수술관리, 심근경색, 당뇨 등으로 봄과 가을, 1년에 2차례씩 정기검진이 있으며, 6개월 약 처방 받아 선교지를 오가며 사역하였습니다.


 지금도 장애인으로 걷기 불편한 후유증, 외롭고 쓸쓸함과 아픔도 즐기며, 찬송하며 호수가를 걷고 있습니다. 정년은퇴 후 "부르시는 그날까지" 자비량으로 "CM리서치" 등 사역하며 지내고 있습니다.(rch)



*충주 호암 호수가를 거닐며(2019.2.4.월. 까치설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