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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이야기

노인”(盧忍)선교사는 누구인가?

노인”(盧忍)선교사는 누구인가?

-“로인형제”, 만주선교사로 파송(1932)


노종해(CM리서치)


*노인 선교사(1905-1951)-동양선교회 파송


첫째, “活泉”(1932年10月號)지의 ''로인(盧忍)'' 선교사에 대한 보도 자료이다.


[奉天] 봉천 포하로 임명 된 로인 형제는 지난 七月十二日에 봉천에 도착하야, 1개월간 수용소 혹은 로천(露天)에서 열심히 전도하야, 결신자 8백(八百)여 명과 중생자 二百五十여 명 을 엇은 후 八月二十日 후에는 호열자 관계로 피난민 전도는 중지하고, 동 二十五日부터 북능(北陵)이란 곳에 교회를 신설하고 四일간 전도회를 연 결과 四十명의 결신자를 얻어, 동 二十八일 주일에는 창립예배를 보았는데 당일 우천임에도 불구하고 三十여 명이 모여서 예배하는 중 헌금이 三十二전이었으며 九月四日 주일에는 五十명이 모였다더라.


“活泉”(1932年10月號)지의 "로인형제" 선교활동 보도


둘째, 노인"(盧忍)에 대한 <기독교백과사전>의 기록이다.


"노인(盧忍), 1905-? 성결교 목사, 1930년 동양선교회 서울신학원에 입학하여 1932년 졸업하였고, 그해 7월부터 목회를 시작하여 만주 봉천성 북능(北陵), 포하, 구연둔, 북간도 옹성자, 무순 등지에서 목회하였다. 참고문헌 성결총회 30, 34."(기독교대백과사전 3권,교문사 발행)


*노인2 盧忍-기독교대백과사전 3권, 교문사 발행


셋째, “노인”(盧忍) 선교사에 대해 장남 노병례의 증언이다.


“노문진(1905년 생)은 20세 시 일본 동경 자유주의 서양 신학문 배우러 갔다가, 갑자기 걸리신 병 1926년 경, 와세다(早稻田) 성결교회( 聖潔敎會에)서 구원 치유 받으시고 고향집에 오셨을 때, 간증전도하시니 곧 할머님과 아내 회개 입신, 곡식 저장의 고방(庫房)간과 부엌 등에 섬겨 모시던 귀신 당직개(싸리함) 다 부셔 태워버리고, 그 때부터 2키로나 먼 교회에 눈이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다니신 독실한 신앙심”(참고-盧炳禮: 피와 눈물의 “平和의 뿌리”, 九旬記念特集, 서울, 삼일인쇄 2013.p394)


    “나(盧炳禮)의 아버지는 26세 시 일본 동경(東京)에서 구원의 체험으로 귀국 당시 경성성서학원(京城聖書神學院)에 입학 졸업 직 전 1932년 만주 봉천(奉天=심양) 북능(北陵)이라는 곳과 무순(無順) 등지에서 선교사로 4-5년 동안 열심히 개척전도하시다....선교사에서 생겨난 위장병, 늘 아프시던 것 더욱 심한 통증으로 피난 못 가신다고...”(평화의 뿌리,p395. 외 필자소유 미발행문서)


*증언-盧炳禮: 피, 눈물의 “平和의 뿌리”, 九旬記念特集, 서울, 삼일인쇄 2013. p394-395.


노인(盧忍 본명:노문진(盧文珍), 성결교회 목사로 만주선교사


이상 자료를 정리하면, ''노인''(盧忍 1905-1951) 선교사의 본명은 ''노문진''(盧文珍)이며, 20세 청년기에 동경으로 유학 가셨다. 이듬해 21세 때(1926년) 심한질병에서 치유 치유체험하시고, “와세다 성결교회”에서 기독교로 입신하셨으며, 신학원에서 성경공부에 몰입하는 중, 1929년 초 귀국하여 “경성 성서학원”에 입학 하시였음을 알 수 있다.


“노인”(본명:노문진,盧文珍) 선교사는 1932년 초 성서학원 졸업 직 후, 동양선교회로 부터 “만주선교사”로 파송 받아, 만주 봉천성 북능(北陵), 포하, 구연둔, 북간도 옹성자, 무순 등지에서 선교하시며 개척 목회하시였다.


''활천''지 보도(1932.10윌호)에 의하면, 당시 남만주 지역으로 선교지 확장되던 때 동년 7월 12일, “봉천 포하” 에 도착하여, 즉시 북치고 소리 높여 찬송하며 “노방전도”에 착수하였고, 북능과 포하에 교회개척 설립활동에 임하였음을 보아 그의 열정적 헌신 선교활동을 엿볼 수 있다.

과로로 질병이 악화 되어 사역을 마치고, 해방 직후 고향(평남 평원군)으로 귀향하였으며, 평양 문수리에서 투병 중 6.25사변을 격고, 결국 1.4후퇴 때 피난하지 못하고 피난 중에 다시 귀향하여, 공산당에의 해 체포되어 총살로 1951년 별세하시었다.


장남 노병례의 증언에 의하면, "동향 이웃 지인이 노인 목사님은 피난길에서 되돌아 오셔서, 곧 체포 되어 총살 당하셨다‘고 증언하여 별세함을 알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1932년 노인 선교사를 파송한 "동양선교회"(OMS,1912년)


마치는 말-노인(盧忍)목사는 필자(盧宗海)의 할아버지


필자는 ''''의 손자로 평남 평원군에서 출생하였으며, 할아버지께서 ''노종해''(盧宗海)라고 이름 지어 주셨다. 평양 문수리에서 살다가 부모와 함께 1.4후퇴 때 남하하였다. 국내 15년 목회하는 중 “선교사”로 헌신하여 파송(기감, 1985년4월4일) 받았으며, 말레이시아 선교사로 34년 동안(1985-2019) 사역하고 정년은퇴 하였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서, “한인선교사의 역사정리 공청회”(2019.10.18.)가 열린다 하여 이에 자료로 작성하였으며, 성결교회 등 교회사연구소에 제보하며 검토해 보시기를 자료로 제공한다.


앞으로 한인 선교사에 대한 더욱 포괄적이며 심층적 연구로 “세계 한인선교사들과 사역활동”에 대해 밝혀지는 역사가 정리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오늘도 조부 노인(노문진) 선교사의 헌신과 삶을 기억하면서, 부르실 때까지 사명 감당할 것을 결단하고 있다.(rch-201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