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핫 이슈

비잔티움의 영욕:성당에서 모스크로!

*오늘날 아야 소피아 성당 내부!


오늘은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플로스 저, "비잔티움의 역사"(최하늘 역, 더숲 출판:2023.3.6.)를 4일 동안 다 읽고(4.22~25), 감회에 잠잠겨서!


"비잔티움"은 동서를 잇는  중요 도시로 아테네 인근 도시구가를 가리킨다. 비잔티움은 기원 전 7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스의 도시)로 지금의 이스탄블에 세워졌다.

로마제국 황제 콘스티누스는 324년에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325년 니케아에서 최초 기그리스도교 공의회를 개최, 451년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제국내 다양한 종족과 지역, 언어, 공동체들을 기독교 신조로 세계를 통일시키려 했다.


곳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교회를 건축하에 역사적 건물, 예술, 비잔틴 문화를 남겼지만, 내부의 권력 탐욕과 다툼으로 성직을 겸하며, 권력과 부귀의 승계 통로로 정치화된 그리스도교는 기독교 복음과 신앙과는 관계 없었고 권력의 도구요, 허위에 불과했다. 그 추잡한 욕망의 도가니였다.

수도원은 권력의 보호로 특권은 누리고 재산을 증식시켜 부를 누렸고, 교회를 웅장하게 설립하였다. 주민들의 신앙의 중심도 지도력도 갖지 못하였다.

황실은 사제를 겸하여 총대주교를 주물렀고 수도원의 수도사들과 교회는 자신들의 권력의 수단이요 상징이었다.


갈 수록 동서남북 주변 종족들의 침략으로 시달려 왔고 영토는 좁아졌으며, 점차 이슬람 세력에 몰락하였다.  십자군을 일으켜 만회하려 했으나, 제국 내부의 탐욕과 타락으로 점점 약화 되었다. 십자군도 제 역할을 할 수 없었고 흐지부지하였다.

튀르크 이슬람세력은 야금야금 칩범해왔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 폴리스를 정복하였다. 역사적인 교회를 모스크로 전환시키고, 성상들을 아랍문자로 신앙고백을 교체하였다.

그러나 비잔틴인들의 부호들과 문화는 소멸 되지 않고  살아 있으며 유럽문화 속세 깊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유럽 이해에 긴요함을 기르쳐준다.

사진으로 비잔티움의 영욕의 역사를 담아 보았다!-사진 p119,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