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L:2025. 1. 8. 수, 11:00am); L사장(Korea Malaysia Trading, KMT) 그룹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맛집으로 유명한 오버씨 레스토랑(Oversea Restauran)에서 저녁식사 초대한다고 톡 문자가 온 것이다.(1. 7. 화)
나는 쿠알라룸푸르에서 37년 전에 클랑 라마 선교센터에서 풋풋한 청년시절 만났던 때를 기억하고 KL방문 중이라고 카톡문자를 보낸 것이다.
L사장에 대해 인터넷 검색해 보는 동안 사업을 크게 하고 있으며, 한국정부와 지자체들과도 농산식품 무역을 말레이시아와 연결시켜 공헌하고 있음도 알았다. K-푸드의 선두 주자이시다.
L사장은 선교사 활동 시기에도 쿠알라룸푸르 도심 이세탄 쇼핑몰에 라면 등 창의적으로 한국식품코너를 판매 전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식품 무역을 확대시켜 KLCC 지하 식품점에도 한국식품을 전시 판매를 개설하였으며, 페낭, 말라카, 조호바루 등 전국 주요 도시로 식품무역 전시 판매장을 확산시키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사업가로 성장하고 있음도 알고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무엇보다도 이사장은 난민 선교 활동을 틈틈이 지원하고 있었다. "목사님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하세요"하며 거침이 없었다.
도심 노동장, 정글 노동자로 힘겹게 생존에 투쟁하는 난민들을 도울 때, 한국의 컵라면이 최고였다.
L사장에게 컵라면이 요긴하다고 하면, 한 트럭씩 잘란 아루의 선교센터로 배달해 주는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하던 그때 그 섬김 봉사를 잊을 수없었다.
또한 난민학생들에게 과일이 필요하다고 릴리안 선교사도 요청할 때 이사장은 그 비싼 한국 사과를 한 트럭 실고와 임비 난민학교에 실어다 주었다.
이러한 라면, 음료수, 사과 등등을 난민학생 어린이들과 도심, 정글 난민들에게 배급해 주었다!
L사장은 캐토릭 성도였으나 선교사 목사인 나를 힘껏 돕고 봉사하는 따듯한 인사였다. 사업만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는 신앙의 인품을 지닌 분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최근에 말라카 주 왕으로부터 "다또"(Dato)란 백작신분의 작위를 수여 받았단다. 말레이시아에 공헌하고 있는 귀족 작위를 받은 것이다.
나는 옛 추억에 젖어 가볍게 생각하고 카톡문자로 쿠알라룸푸르 방문을 알렸지만 한국과 말레이시아를 잇는 사업가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알았다.
37년 전 그때의 청년이 아니구나! 이런 분을 싑게 만나자고 연락했으니 내가 경솔했구나! 기도하며 기쁜 마음이었다.

그런데 만나자고 카톡 문가 온 것이다. 잘란 임비의 Oversea Restauran에서 저녁식사하자고 반가워하며 문자가 온 것이다.
또 한분, 딸을 만나러 온 VIP분과 같이 식사자리에 함께해도 좋을지도 문의해 왔다. 나는 즉시 "그럼요 합석 좋지요, 환영합니다!"라고 답하였다.
L사장은 숙소인 호텔로 픽업 왔고, 잘란 부킷빙땅 잘란 임비(Jalan Imbi)의 오버씨 레스토랑 2층 방으로 안내되었다.
레스토랑 방에 들어서서 VIP분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누며 소개받아보니, 삼성장군으로 은퇴한 분이며 정부 요직을 두루 맡은 VIP였다.
딸이 쿠알라룸푸르 인근의 특화지역인 싸이버자야(Syberjaya)에 직장이 있음으로 "왜 말레이시아인가?", 의아해서 방문하였단다. 방문하여 여기저기 다녀보니 환경도 좋고 치안도 안전하여 맘놓았고 흥미를 갖게 되었단다.
나도 군종장교 군목으로 근무했던 시절(1975년)이 생각나서 "역전의 용사이시군요. 더욱 반갑습니다"며 삶의 이야기를 정답게 나누었다. 남자들은 군생활 이야기만 나오면 하나가 된다.
또한 합석한 S교수는 L사장과 청년 때 한인교회와 선교센터에서 만난 분이었다. 이분들은 새로 창업하고 개척하여 공헌하는 삶을 누리는 인사가 되었다.
특히 S교수는 재마 교민들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자료수집하고 있었단다. S교수는 나를 만나 옛 교민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단다.
그 바람에 나는 기분이 업되어 쿠알라룸푸르에 첫 도착한 1988년도부터 활동과 재마 한인 교민들의 삶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맛집으로 유명한 오버씨 레스토랑의 음식이 테이블에 차려졌는데도 나는 흥분되어 삶의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맛 좋은 특별한 요리의 차슈와 스팀 피시, 치킨요리, 두부요리 등등 다채로운 메뉴였는데도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맛갈스런 음식도 간간히 맛보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올해(2025년)로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수교 60주년이며, 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6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있는데 한국정국이 저러니 안타까웠다!
말레이시아는 1965년에 독립하고 한국과 수교하였으며, 한국기독교도 선교사를 사라왁에 파송하였다. 그래서 올해로 한마 60주년이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교민은 한국인 의사 15명이 왕실 의사로 옴으로 시작되어 교민들의 신분이 높고 중요한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 대에 들어서며 교민은 베트남 전 후, 중동건설 현장에서 철수된 한국인들이 귀국지 않고 쿠알라룸푸르로 이주하며 교민들이 늘어났다.
또한 현대건설에서 페낭다리를 건설하여 신화를 남겼고, 이때 한국 기업이 말레이시아에 진출하고, 한인 근로자들이 정착하여 교민사회를 이루었다. 개인 사업, 비즈니스로 진출하며 교민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1980년 초에 왕실의사 중 쿠알라룸푸르 잘란 우탄트(Jalan U-Tant)의 외교관 지역에 여의사 최박사가 있었고, 이분은 크리스천으로 말레이시아 감리교 황감독과 협력하여 정부에 한인교회를 베우고 사회단체로 공식등록하도록 주선하였다.
당시 말레이시아 정부에 사회단체로 등록은 한인회(Korea Society)와 한인교회Korean Church)였고, 교민사회도 정착되었다.
재마 한인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시민권이나 영주권조차도 받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사업자 비자로 받을 뿐이고 올림픽 이후 관광 방문 무비자로 3개월 입국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교민들의 신분은 불확실하였고 임시 체류할 뿐이었다. 대기업 임원이나 사섭성과에 따라 장기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대부분의 교민들은 임시 방문 비자였다. 3개월마다 비자갱신을 위해 이웃나라를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신분의 차이가 교민사회 갈등의 요인이 되었다. 지상사 분인가? 개인사업 교민인가? 은근히 차별하고 거리를 두는 갈등이 한인사회에 깔려있었다.
쿠알라룸푸르 한인교회는 하나로 설립출발히였고(1982년) 1천 명 정도가 쿠알라룸푸르에 거주하였으며, 한인교회 집회는 300명 정도였다.

1988년 한국의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며, 1990년도부터 관광객, 영어공부를 위한 자녀유학, 말레이시아 대학과 사립대학 컬리지 등등 이주 교민들이 급증하였다.
KL한인학교 설립은 한인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나, 자녀들이 국제학교에 입학하며 확장돼었다. 재마 한인회회도 교민 중심으로 시작되고 대기업 지상사 임원들도 참여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한인 선교사들도 각 교파마다 파송되어 한인교회들을 곳곳에 개척설립하며 난립하였다. 한인 교민들은 동서 말레이시아 전국으로 확산되어, 관광 방문비자로 교민 3만 명 시대가 되었다.
교민들의 직업도 다양화 되고 관광가이드, 한국식당, 한인마켓, 어학원, 입시학원, 한의사 등등 교민사회는 확장되어 가며 갈등의 골도 깊어갔다.

새천년인 2천 년부터 한국의 모바일 인터넷. 갤럭시 스마트폰, 전자산업 등이 주도하며 교민사회는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고, 한국정부에서도 재외동포 재단 등으로 지원 관리되었고 해외사업자 단체도 한상협회 등 넷트워킹으로 산업을 주도해 나가도록 정책변화가 시도되어 조직화되었다.

재외동포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지며, 한국 국내 정치도 한인사회에 개입하게 되었다.
교민들의 삶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S교수가 녹음 등으로 부축이기 때문에 나는 더욱 기분이 업되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름으로 흥분하여 가슴이 벅찼다..
VIP인사도 있는데 나만 떠버리는 것 같아 양해를 구하였지만 흥미 있다며 경청하고 있단다!
시간도 어느덧 10시가 되고 3시간이나 식탁에 둘러앉았으니 미안도하였다.
"이젠 그만 일어나지요, 레스토랑도 문닫을 시간이 다가오니 일어나지요!" 이에 동의하고 S교수는 다시 찾아뵌다며 레스토랑을 나섰다.

다또 L사장의 운전기사가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새해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나는 에스콧 스타호텔 방에서 밤잠을 설치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교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매우 즐거웠지만 쑥스럽기도 하고 S교수의 교민사 정리에 도움이 되려나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매우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누가 내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주나 감사하였다.
잠자리에 누었으나, 올해(2025년)는 한마 수교 60주년인데, 한국 국내는 탄핵 정국으로 혼란하니, 언제 정상으로 평온을 찾을까! 우려하며 정신만 말똥말똥 깨어 있다!(리포터 글-노종해:2025년 1월 8일, 수.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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