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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사역 이야기

첫 영,미 세계선교여행: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에 등록하고서!(1992)

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노종해(CM리서치)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저는 7월 13일부터 8월 7일까지 미국 시카고 빌리그레함 센터에서 열린 “한인세계선교대회”(Korean World Mission ’92)에 참가하였습니다. 대회 참가 기간 동안 한인교회 강단을 맡아 설교해 주신 Dr Batumalai목사님 (말레이시아 신학원 교수)과 Balahu Hassan목사 (원주민 Sengoi 선교연회장)님께 감사드리며, 설교 통역으로 수고해 주신 이경찬선생과 고영훈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Balahu Hassan 목사님은 말레이어로 설교하셔서 우리 한인교회가 현지교회는 물론 원주민교회와 믿음 안에 형제의식을 굳게 하는 계기가 된 줄 압니다. 또한 각 부서에서 맡겨진 주의 일을 감당해 주신 임원 여러분들과 부족한 종을 위해 기도해 주신 성도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영국 미국 하는 놀이를 하며 자랐는데 이번 기회에 영국 런던과 미국의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스 등을 방문케 되어 더욱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목표로는 이슬람 자료를 수집키위해 런던과 뉴욕, 보스턴을 방문하였으며, 한인세계선교대회(7. 23-8.1) 참가를 위해 시카고를 방문하였고, 흑인폭동의 현장을 보기 위해 로스앤젤스를 방문하였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거쳐 돌아왔습니다.

*런던 피카딜리 광장에서(1992년)

말레이시아에 4년 산 경험으로 용감하게 사전 준비도 없이 영국 런던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밤새 비행하여 새벽 6시에 도착하였고 공항 안내소를 찾아가 호텔을 예약하고 전철로 찾아갔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대로 탈 수 있는 전철표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 One-Day-Travel 전철표를 구입하고 빅토리아역으로 가서, 런던 시내관광버스를 타고 오리엔테이션을 하였습니다. 그 후 런던관광 안내팸플릿을 보고 계획을 세워 대영박물관, 버킹엄궁, 런던타워, 웨스터민스터 사원 등 관람하였으며, 전철로 오가면서 중세기 시대에 건축한 웅장하고도 수려한 교회들과 건물들을 보았습니다. 특히 British Museum 부근의 고서점을 찾아보았는데 좋은 책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런던 British Museum 부근의 고서점!

저는 한국에서 교회사를 강의하였는데 이곳 서점에 와보니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한국기독교역사 자료들도 많이 있는 것 보았습니다. 돈이 있었으면 모두 사가지고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곳 서점에서 동남아시아 이슬람 자료를 구입하였습니다. 유럽 각국의 학생 청년들이 방학을 기해 관광 여행하고 있음을 보고 우리 학생청년들도 유럽여행을 자유롭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런던타워를 관람하고 나왔을 때,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전도하는 “런던시티선교회”를 보았습니다. 요한 웨슬리목사님은 의자를 가지고 다니며 어디서든지 노방전도 하셨다는데 지금도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전도하시는 분들을 보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더욱이 한국인 민경주 선교사가 함께 사역하고 있음을 알고 기뻐하였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민선교사의 안내로 웨슬리회심교회와 기념교회, 비국교도들의 묘지등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런던시내의 웅장한 교회들을 보며 과거의 영화를 보는 듯했고 세계선교의 불을 켰던 영국이 오늘날 신앙의 불이 꺼져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했는데 노방 전도단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불길을 남겨 두시고 일으키고 계시는구나” 생각하며 뜨거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후러싱 NY에서 김영식 목사와 함께!(1992년)

미국에서는 놀라기도 하고, 감격적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제멋대로 자유를 누리는 미국이 방종으로 흐르는 건 아닌가 놀란 것입니다. 뉴욕, 시카고, LA 등 대도시가 폐허 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폭력으로 치안이 불안하여 두려움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 좋은 건물들을 불질러 파괴시켜 놓고 폐허의 거리에 나뒹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동성연애자들의 거리도 있어서 동성끼리 버젓한 대낮에 키스하고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자유를 최대한으로 누리는 나라이긴 한데 그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뉴욕 도심 맨해튼의 한인상회들!(1992)

미국에서 감격적인 것은 우리 교포들의 개척적인 삶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도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한인교포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뉴욕맨해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근처에는 한인 상회가 즐비하였습니다. 해도 너무할 정도로 한글 간판을 내 걸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하고 장합니까! 폐허와 같은 거리도 한국인이 들어가면 번화가로 변하는 것이 미국이었습니다. 뉴욕뿐 아니라 시카고, 보스턴, 필라델피아에도 한인 타운이 건실하게 자리 잡고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한인백화점을 위시해 한인 거리가 도시 중심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근면한 한국인들은 뉴욕의 야채 과일가게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시카고에서도 세탁소의 80%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식당 음식은 한국국내 보다도 맛이 더 있었으며, 한국식당에서 일식도, 중국식도 겸하여 경영하고 있었음도 눈여겨보았습니다.

*LA 한인교포들의 거리!(1992년)

우리 한국교포들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계에도 진출하고 있으며, 학계에도 눈부시게 진출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유명한 대학의 20%는 한국인이며, 유수한 신학교의 30%가 한국인이란 점입니다. 제가 방문한 콜럼비아 대학에도 한국인이 500여 명 유학하고 있었고, 하바드대학, 예일대학, 프린스턴 대학, 시카고대학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쥴리어드음대 만해도 한국학생이 200여 명이나 된답니다. 미국대학들은 한국 학생을 받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대학 안내문을 한글로 만든 것도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물론 문제 있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미국의 유명한 대학의 수석 입학 및 졸업을 한국인들이 한다니 놀라운 일 아닙니까? 1903년 하와이로 거의 노예로 속아서 간 이민역사의 시작이지만 교회를 세우고 신앙 중심으로 굳게 서나가는 미주 한인들은 피나는 노력과 근면으로 이국땅에서 개척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2-3세들이 각방면으로 진출한 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미주한인들은 흑인폭동에 대해서도 의연하였습니다. "흑인폭동이라지만 올 것이 온 것입니다. 이것이 한인사회가 미주에 존재하고 성장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일 뿐입니다"라고 제가 만난 교포는 말했습니다. 신문보도와는 달리 늠름한 한국교포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한인들은 야채가게, 생선가게등 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 변호사,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글신문 가지 수도 많았고, 한국어 방송도 스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곳:빌리그레함 센터. 1992. 7.27-8.1.)
*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빌리그레함 센터, 1992)

이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한인세계선교대회"도 미국의 한인교회들이 연합하여 개최한 대회란 점입니다. 세계선교를 가슴에 안고 개최한 집회입니다. 미국의 큰 교회들은 텅 비어 가는데 유독 한인교회들은 부흥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미국교회들이 한인교회로 이전되고 있음도 보았습니다. 아예 한국식으로 교회를 짓고 모이는 교회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주일예배를 뉴욕 벧엘교회, 후레싱제일교회, 시카고 갈릴리교회에서 인도했습니다. 1000여 명 모이는 교회도 있고, 5-6백 명 모이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뉴욕 기독교방송에서 인터뷰녹음도 하였습니다. 주일설교도 방송되었습니다.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진호 목사, 사모님과 함께 KL에서!(1990년)

필라델피아에서는 이진호 목사님과 그 자손들을 만났습니다. 서울 돈암동에서 한 교회를 섬기셨는데 환갑이 넘으신 때 미국으로 떠나셔서 소식이 궁금하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찾아뵈었더니 딸 6, 아들 1의 가정들이 필라델피아와 시카고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진호 목사님은 자손들을 불러 모아 환영도 해 주셨고 안방까지 내어 주셔서 황송한 마음으로 편히 쉬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가족을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심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교포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믿음을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며 축복해 주심을 보았습니다. 저는 주일날 강단에 올라 머리 숙여 기도할 때, 제일 먼저 우리 한인교회 성도들이 떠오르며 말레이시아 교포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말레이시아 한인교회 성도들을 기억하시고 큰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말레이시아 교포들을 기억하시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기도할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시카고 미시간 호수에서(1992. 7.)

성도 여러분! 여러분 홀로 고국을 떠나 이국 땅 말레이시아 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능력의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여러분 홀로 일하며 수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며 함께 수고하고 계십니다.

오늘 봉독 한 말씀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가 부모, 형의 집을 떠나 빈 들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들판에서 하늘을 지붕 삼고, 들판을 침대 삼으며, 돌멩이를 베개 삼아 누웠을 때 얼마나 처량합니까? 들판에서 앞 날을 생각할 때 두렵기도 합니다. 그는 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하셨으며,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란 말씀입니다. 야곱이는 여기서 깨달았습니다. 빈들판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야곱이 잠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6)하고 베고 자던 돌을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하였으며 이곳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벧엘”이란 뜻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며 “교회”를 가리킵니다.

오늘 말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입니다. “있으리라”가 아닙니다. “있었다”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며, 복된 삶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힘쓰고 수고하는 회사와 공장, 일터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가정과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 힘 받아 승리하며 기쁨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시카고 미시간 호수에서(1992. 7.)
*말레이시아 선교 보고서에서!(1992. 10.)
*세렘반 한인교회 창립 후, 선교국 총무 조승혁 목사 방문!(1995. 6.)
*말레이시아 KL한인교회!(1991년)
*KL한인교회 선교센타 예배실!
*KL한인교회 교회학교 어린이들(1990년)
*KL한인교회 성가대 찬양(1990년)
*말레이시아 KL한인교회 성도들!(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