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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알기

연재1)- 동남아 말레이 역사와 분포

<연재1-동남아 말레이 문화 들여다 보기>


I. 동남아 말레이 역사와 분포

 

노 종 해(CM리서치)


1. "말레이"(Malay)는 누구인가?


    말레이(Malays)들은 동남아시아의 원주민이나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말레이시아 셀랑오 샤알람에 있는 "말레이 국제사무국"(Malay International Secretariat)은 말레이(Malays) 인이 3억5천만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흩어져 있는(디아스포라) 말레이 2천만 명은 수리남 공화국(Suriname, 남미북부), 남아프리카, 마다가스카(Madagascar,아프리카 군도 공화국), 스리랑카, 오스트랄리아 군도 등에 분포되어 있다. 말레이인들의 대부분은 동남아시아에 거하고 있으며 오늘까지 저들의 문화와 전통을 자부하며 지키고 있다.
 



2. "말레이"(Malay)인의 근원


1) 남 중국 계통(Yunnan Connection)

    인류학에 의하면 말레이 인들은 남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2번의 이주물결이 있었다. 첫째물결은 후 석기시대인 10,000-8,000BC 년에 최초 "원 말레이"(Proto Malays) 이주가 있었고, 둘째물결은 "신 말레이"(Deutro Malays)인들의 이주이다. 이들은 깊은 정글에서 산 계곡과 강변에 정착하였다.


2) 보르네오 계통(Borneo Conncction)

     오늘날 말레이시아의 인류학자 완 하심박사(Dr Wan Hashim Wan Teh)에 의하면 사라왁 "니아 동굴"(Niah Cave)에서 발견된 해골들(skulls)을 35,000BC 이전으로 추정하며, 이로써 말레이(Malay)인들이 보르네오(Borneo) 섬에 정착했고, 바다를 통해서 타이완, 태평양 군도, 아프리카 군도(Madagascar) 까지 멀리 퍼져 나갔다고 했다. "말레이 고대어"(archaic Malay word)는 마다가스인어(Malagasy)로 까지 퍼져 갔다.


    이는 최초 말레이인들이 방랑자들(nomads)이였음을 말해 준다. 오늘날 말레이시아에서는 "오랑아슬리"(Orang Asli, 원주민)로 인도네시아에서는 "다약"(Dayks)으로 알려져 있다


3) 다른 이론들(Other Theories)

    이븐 유솝은 "Permata Yang Hilang"(잃어버린 보물)에서 저명한 중세 이슬람 역사가인 알-아띠르(Al-Athir)의 저서를 인용하며, "말레이"(Malay)는 아브라함의 셋째부인 콰트라(Qatra) 자손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아랍 혈통학(Arabic genealogy)에서는 아브라함과 콰트라 혈통으로 소멸된 미디안(Midianites, Madyan) 사람 계통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한 17세기 "멜라유 연대기"(sejarah Melayu", Malay Annals)에서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자손이라 주장하고 있다. 즉 말레이 왕들(Malay Kings)은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으로, 알렉산더대왕이 인도를 여행하고 팔렘방 왕국(Kindom in Palembang)과 후에 싱가포르(Singapore) 왕국을 건설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3. 초기 말레이 종교와 신앙


1) 정령신앙(Animism)

    말레이인들의 신앙은 원시 정령신앙으로 동물과 식물에는 물론 만물에 “써망앗”(Semangat)이라는 신령이 있다고 믿었다. 농경을 위한 지신(地神)은 “파왕”(Pawang, Shaman), “써망앗 타나”(Semangat Tanah)와 어부들이 숭배하는 물신(水神)으로 “써망앗 라웃”(Semangat Laut)이 있다.(써망앗 라웃은 음식을 가득실은 제물을 드리는 소형보트, lancang.)


    “통찰력”(Budi)은 타인을 위한 옳은 행실로 정령(Spirit)를 따른 삶이었다. 무하마드 아리프 아흐마드(Muhammad Ariff Ahmad)는 말레이 전설에 따라 “통찰력”(Budi)은 말레이 속담을 풍부한 수집으로 식별할 수 있는 지혜에 이른다고 했다.


2) 힌두교(Hinduism)

    말레이는 인도(India)와 무역을 통해 두 종교를 받아들였다. 즉 100BC에 힌두교(Hinduism)와 이후 불교(Buddhism)를 받아들였다.

말레이반도(Malay Peninsula)는 황금의 땅(the Golden Land)으로 황금산지와 풍부한 자연 자원을 지닌 곳으로 알려져 왔다.(이집트의 고대 희랍역사가 Ptolemy)


    1세기에 인도는 신비한 황금의 땅 사바르나드비파(Savarnadvipa)를 찾기 위해 탐험대들을 급파했으며, 이런 탐험대들은 남서로 부는 몬순 바람을 타고 100BC에 처음으로 끄다(Kedah)에 도착했다고 믿고 있다.


말라야(Malaya)를 발견한 선원들은 황금 빌딩을 발견치 못했지만, 향기로운 목재, 향료, 주석과 금 등 풍부한 교역품들을 찾아내었다. 선원들의 탐험소식은 퍼졌 나갔고, 인도인들이 계속 말라야(Malaya)에 도래하여 저들의 물품들과 상호교역이 이루어졌다. 


인도무역 상인들은 물품을 팔기위해 말라야(Malaya)를 여행하였고, 저들의 종교인 힌두교를 토착주민들에게 영향 주었다. 힌두교는 인도 상인들의 선교활동으로 전파된 것은 아니지만 더 높은 수준의 생활을 추구하던 말레이인들의 갈망이 힌두교를 받아들이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힌두교신앙은 말레이 왕실(Malay Royalty) 자녀들과 인도인 상인들과 그 자녀들 사이에 상호 결혼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므로 인도인 종교와 문화전통이 전달되었고, 주민들은 힌두교와 불교 신앙을 실천하기 시작하여 인도양식의 사원들도 건설되었다. 토착 왕들은 그들 자신을 “라자”(Raja)라 칭하였고 인도정부의 행정양식도 받아들여졌다.


역사가들은 이러한 왕국을 “인도화된 왕국”(Indianised Kingdoms)이라 하였고, 인도무역 상인들의 영향은 말라얀들의 성품(Malayan Persona)에서 광범위하게 보인다. 이러한 영향의 실례들은 오늘날 말레이 문화, 예술, 언어, 의식 등에서 보여 진다.


당시 말라야의 자원자원인 열대목재, 향료와 주석 등은 무역센타로 평판이 좋았으며, 지역발전으로 이끌었다. 인도, 중국과 중동의 항구들이 규칙적으로 운영되었고, 말레이군도(Malay Archipelago)로 상선들의 왕래도 빈번하였다.


3) 불교(Buddhism)

    말레이군도(Malay Archipelago)에는 초기 문명화된 여러 왕국이 있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왕국은 600AD에서 1200AD 까지 통치한 스리비자야 제국(Srivijaya Empire)이다. 7세기 중국 순례승려 이징(Yijing)에 의하면 이 왕국의 수도인 팔렘방(Palembang)은 인도불교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스리비자야는 말라카 해협을 관장하는 해상무역 제국으로 중국과 인도 사이의 중요한 무역항을 관장하였다. 스리비자야 군주들은 해적들을 단속하였고 중국과 인도의 무역관계를 관리하였다. 향료, 방향목재(Gaharu, Cendana 白檀), 등나무와 야자 같은 토착생산품들은 인도와 중국, 아랍, 페르시아 무역상들에게 팔았다.




    스리비자야으l 영향은 슈마트라, 자바, 보르네오는 물론 말레이 군도 전역으로 펼쳐졌으며,인도와 중국도 무역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절정일 때, 말레이 언어는 슈마트라 소수종족들의 방언에 불관 했으나 공식 언어로 사용 되었다. 이후 말레이 언어는 불교와 힌두교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대치하는 이 지역 혼합어(lingua franca)가 되었다.


    스리비자야의 영광은 시암(태국)과 중부자바의 해상왕국 등 여러 이웃 군주들에 도전을 주었다. 또한 인도남부의 촐라 왕(Chola Kings)이 이끄는 무력함대를 포함하여 외국 침략자들의 공격을 빈번히 받았다. 결국 자바동부에 기지를 둔 마자파힛 왕국(Majapahit Kingdom)에 몰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마자파힛 통치는 1세기를 지나지 않았다. 그 절정기 동안 저명한 자바인 현자 음푸 단뚤라(Mpu Tantular)는 인도네시아 해안군의 구호인 “다양성의 일치”(Bhinneka Tunggal Ika, Unity in Diversity)란 글귀를 화폐에 주조하였다.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는 화합의 삶은 힌두와 불교도의 합리적인 교의로 매력 있는 멧세지 이였다.


4) 말라카 왕국

    말라카 왕국(Kingdom of Malacca)은 마자파힛 제국의 몰락 이후 가장 분주한 지역의 해협 중심에서 일어난 왕국이다.



    고전 "써자라 멜라유"(Sejarah Melayu,멜라유 역사)에 의하면 말라카는 힌두통치자인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 왕이 건설한 왕국이다. 파라메스와라는 마자파힛이 침략해 올 때 싱가푸라(Singapura, Singapor)로 피신한 분이다.

마자파힛 제국 몰락과 명조의 중국 무역은 특출하게 후원하여 말라카 성장을 협조하였다. 말라카는 유력한 정부체제와 중요한 항구를 지니고 있었다.


    파라메스와라는 무슬림 공주와 혼인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슐탄 이스나칸다 샤”(Sultan Iskandah Shah)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는 아랍과 인도 무슬림이 자신들의 항구로 여기도록 고무하였고, 중동에서 무슬림 선교사들이(Muslim missionaries)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말라야(Malaya)에 도착토록 하였다. 리차드 윈스테드 경(Sir Richard Winstedt)에 의하면 이러한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이란에서 도래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세평에 의하면 이슬람은 잠자는 동안 꿈 속에서 할례를 받은 제3대 슐탄 통치기 까지는 국가종교로 되지 않았다.


15세기 말라카 정부 조직


슐탄(Sul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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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장관(Four ministers)

재무장관(Bendahara): 슐탕의 선임고문
출납관(Bendahari):세금담당 장관
해군제독(Laksamana): 전투함 담당 장관
최고위원(Temenggong): 법과 질서 담당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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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방총리(Major ch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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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지방차관(minor cfie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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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마을 추장(Village chiefs)


    파바메스와라 통치 시기부터 1511년까지 말라카는 전성기로, 말라카 이슬람왕국(the Malaccan Sultanate)의 황금시대였다. 슐탄 왕국 후대에서는 무역인들의 필요를 돌보는 지방자치 관청(municipal government)을 설립하였다. 국가는 해군을 창설하여 해적을 단속하고 좁은 해역을 통과하는 상선들을 보호하며 해협을 관장케 하였고, 해양경찰(Orang Laut)을 조직하여 순찰케 하였다.

무엇보다도 말라카는 평화와 안전을 실현한 국제적인 사회였다. 말라카의 성공과 영향은 모든 길이 유럽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말라카의 평판은 동 인도의 향료섬(Spice Island)에 이르는 관문이 되었며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고 말레이 문화와 전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5) 포르트칼 정복시대(1511-16410)

    1509년 포르투칼은 발달 가능성 있는 지역으로 눈여겨보았고, 슐탄과 무역관계 수립을 위해 해군 함대를 파견하였다. 유럽인들은 향료무역 기지 설립을 원했으며, 원정대로 돔 디오고 로페즈 드 쎄큐에이라(Dom Diogo Lopez de Sequeira)를 선발하여 말라카로 파견하였다. 이로써 첫 유럽인들이 말라카 항구로 항해하여 도래하였고. 불행하게도 인도 무역인들과 상인들은 새로운 상거래 경쟁자로 보았으며, 인도인들은 인도에서 포르투칼의 잔인한 행동도 들어왔기 때문이다.



    폴르투칼은 저들의 발을 딛는 곳마다 공격했고, 선원들을 투옥하였다. "멜라유 역사"(Melayu Sejarah)에는 이러한 통계를 생략하고 있다. 포르투칼은 2년 후 또 다른 함대를 아시아로 급파하여, 말라카의 황금기가 막 내리도록 사명을 감당하였다. 포르투칼은 알폰소 드 알부퀘르큐(Alponso de Albuquerque) 제독을 선발하여 말라카를 정복하고 세가지 목표를 성취케 하였다. 즉 감옥에 갇혀있는 동료들을 구출하고, 수익성 있는 향료 시장을 관장하며, 복음을 전파 기지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포르투칼은 현지 군과 전투하여 결국 말라카를 점령하였고, 군주인 슐탄 마흐무드(Sultan Mahmud)는 도피하였다. 그는 조호르의 슐탄을 창시하여 남부 지역과 리아우 섬(Riau Island)을 치리하였다. 말라얀 반도(Malayan Peninsula)의 다른 슐탄 영토를 설립하였다. 슈마트라의 미낭카바우(Minangkabau)와 셀레베스(Celbes)의 부기스(Bugis) 등 이웃 섬들에서 이주민들이 말레이반도로 들어오도록 하여 다양성이 더하게 되었다.


6) “멜라유”(Melayu)란 명칭의 유래

    “멜라유”(Melayu) 또는 “말라유”(Malayu)는 슈마트라 남부 잠비(Jambi)의 바땅 하리 강(Batang Hari River) 입구에 있는 고대왕국의 명칭이었다. “잠비”(Jambi)와 “멜라유”(Melayu)는 흔히 역사책에서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다. “멜라유”(Melayu)는 이 강 입구근처인 “빠당, 라꼬레(Padang, Racore)의 1286AD 건립된 조각상에 근거하고 있다.


    "멜라유 왕국"(The Kingdom of Melayu)은 한 때 스리비자야 제국(the Srivijaya Empire)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분명하진 않지만 긴밀한 동맹국이거나 속국이었을 것이라 여겨 왔다. “멜라유 역사”(Sejarah Melayu)에 의하면 멜라유 강(Melayu River)은 말라카 슐탄의 상징적인 고향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멜라유”(Melayu)는 중국 고문서에서도 발견된다. 7세기 중국기록에는 “모-로-예”(Mo-lo-yeu)로 기록되어 있고, “이징”(Yijing)과 동일 시대의 고문서에는 “마라유”(Ma La Yu)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중국 문서에도 “마-리-이-에르”(Ma Li Yi Er)와 “웨 라이 유”(Wu Lai Yu)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다.


    "멜라유"가 최초로 발견되는 관련문서자료로는 인도의 라마야나(Ramayana)와 바주 푸라나 문서(Vaju Purana texts)에서도 찾아 볼 수 있고, 11세기 촐라(Chola) 침략기록에도 있다. 철저한 산세가 성벽인 “촐라”(The Chola)는 말라이유 왕국(the Kingdom of Malaiur)이라 표기되었고, 이를 학자들은 잠비(Jambi)의 말라유 왕국(the Kingdom of Malayu)이라 일반적 학설로 믿고 있다.

 

    또 다른 이론으로 “멜라유”(Melayu)는 자바(Javanese)와 만다라잉(Mandalaing)의 “도망자”란(난민들,refugees)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포르투칼 역사가 톰피레스(Tom Pires)는 파라메스와라가 싱가푸라(Singapura)로 도피했다가 정착한 첫 정착지를 베르땀(Bertam)이라 기록하고 있다. 즉,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 자신은 첼랏 사람들(Celates, Orang Selat 셀랏인-순다인을 말함)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은 이미 마라요(Malayo)에서 도망 온 우리 말하는 사람을 알고 있으며, 당신들은 도피해 온 내게 과일을 제공해 주어, ’도피자를 숨겨 주었다‘는 뜻으로 이곳을 말라콰(Malaqa)라 불렀다’.”


7) 말라야로 이민

    더치(Dutch)는 조호르(Johor)에 무역항을 세우며 새로운 세기로 전환을 이루었다. 1641년에 더치는 포르투칼을 말라카에서 축출하였다. 10 후 영국(British)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말레이군도(Malay Achipelago)에 무역항로를 설립하도록 몰아쳤다. 또한 19세기에 중국인들이 전란을 피해 말라야(Malaya)에 도래했고, 그들은 무역에도 연계 되었고, 주석 광산, 철도건설 등에 투입되어 전망 있는 일꾼들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그들의 고향 중국을 동경하며 계속 정착하기로 작정하였다.

인도인들(Indians)도 1920년대 말라카의 개방정책으로 대부분 인도남부에서 도래하였고, 일반적으로 영국 농장에서 고무나무 수액채취자들로 노동하였다.


8) 말레이들의 분포

    오늘날 말레이계는 세 지리적 지역으로 나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중 가장 특출한 지역은 동남아시아로,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 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부르나이. 태국남부, 싱가포르, 필리핀 남부 또는 술루(Sulus) 지역이다.


다음은 폴리네시안 말레이(Polynesian Malay)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원주민들이며, 타이완, 마다가스카(Madagascar)와 하와이 군도 같은 지역의 말레이들이다.


셋째 그릅은 흩어진(디아스포라) 말레이로 경제적, 정치적 요인 때문에 식민 지역으로 내습하여 이주한 말레이 무리들이다. 이들은 남 아프리카, 스리랑카, 오스트랄리아, 미국과 유럽 등에 말레이 동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분들이다.


9) 원주민 오랑아슬리, 말레이계

    말레이반도(서 말레이시아)에는 대략 93,000여 명의 오랑아슬리(Orang Asli, 원주민)들이 있으며, 18개의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 주요 세 종족은 네그리토스(the Negritos), 프로토-말레이(Proto-Malays)와 세노이(the Senois)이다. 오랑아슬리(Orang Asli)는 본토 원주민 자손들이며, 지금도 정글에서 조상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도시생황 방식으로 사는 오랑아슬리들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 정글에서 전통방식 대로 살고 있다.

오랑 아슬리와 사바, 사라왁 종족들은 지역 토착민들로 “부미부뜨라”(Bumiputra, 토착민)로 알려져 있고, 문자로의 뜻은 “본토 자손들”(Sons of the Soil)이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주거지의 토지권리와 주택보조금 등 특혜를 받고 있다.(rch)